한국일보

가짜와 진짜

2013-11-1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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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아동문학가/ 목사)

뉴저지에서 어느 식당에 들어갔다. 두 벽이 책으로 꽉 차 있다. 특이한 식당이어서 책을 한 권 꺼내 보았다. 껍질만 책 같고 속은 비어있는 가짜 책의 장식품들이다. 책까지 가짜를 만들 필요성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였다.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 때 당황한 미 해병 한 사람이 함포에 뛰어들어 적기를 향하여 기관포를 쏜다. 그러나 탄환이 나가지 않는다. 그는 It’s faked!(가짜다) 하고 외친다. 오래 동안 정비를 안 한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가 천국과 지옥을 말한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것이다.


한국의 어느 특수학교 교사가 수업 중에 조는 학생을 보고 향초 불로 귀를 그슬렸으나 깨지 않자 라이터 불로 소년의 귀를 태워 2도 화상을 입혔다고 한다. 가짜 교사이다. 유럽의 산업 국가들이 쓰지 못할 물건들을 아프리카에 버린다고 한다. 물론 버리는 값을 지불하지만 지구를 오염시키는 가짜 기업주들이다.

예수는 남에게 보이려는 부자의 헌금보다 과부의 동전 한 푼에 중량을 두셨다. “회당과 큰 거리 어구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는”(마태6:5) 자들의 위선을 책망 하셨다. ‘탕자의 비유’에서 자만심에 찬 맏아들보다 뉘우치고 돌아오는 둘째 아들에게 표를 던지셨다. 무엇이나 돈으로 환산하는 유다보다 환산하지 않고 그대로 쏟아 붓는 마리아의 마음, 타산 이전의 순수성, 이론 이전의 헌신, 조건 이전의 사랑을 더욱 높이 사셨다.
하나 밖에 없는 나의 생애를 거짓과 형식과 위선으로 끝낼 수는 없다. 진실하게 하루하루를 메워 간다는 것은 자신의 만족이나 남을 위해서도 귀중한 일이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거짓으로 형성된다면 그 이상의 비극은 없을 것이다. 한 나라의 우두머리로 지냈다거나, 유명 인사가 되었다거나, 수 천 억 원을 만지는 대부호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 발자취에 거짓과 눈가림이 있으면 헛사는 것이다.

히틀러는 네 가지 미덕을 말하였다. 1.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2.역경을 이기는 용기 3.지도자에 대한 충성 4.준법정신. 이 네 가지를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만일 이 말을 간디가 했다면 품기는 의미가 매우 달라진다. 그러나 히틀러가 말했을 때, 애국심은 게르만 족의 우월성을, 용기는 생활이 어려워도 당분간 참으라는 요구이며, 충성은 물론 전쟁에서 용감한 전사가 되라는 명령이고, 준법정신은 히틀러 자신을 향한 복종의 강요이다.

진실의 반대는 가식과 형식이다. 가식은 짧고 진실은 길다. 진실은 최대의 설득력이다. 천만 군중을 울릴 수 있는 웅변가의 연설도 어머니의 간절한 한 마디와는 그 감화력에 있어서 비교가 안 된다. 역사에 남는 것은 ‘속’이며 ‘겉’이 아니다. 겉은 보잘 것 없고 광고효과는 작았으나 속이 진실하였다면 그의 역사는 아름답고 향기롭게 남을 것이다.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는 “장사를 30년 쯤 해본 사람은 진실의 승리를 알 것이다.”고 말하였다.

일도 중요하지만 가족 친구 등 사람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돈으로 좋은 집을 지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집을 행복하게 장식하는 것은 진실과 사랑이다. 그대 앞에 두 길이 놓여있다. 바른 길과 잘못된 길, 진실과 거짓의 선택이다. ‘거의 진실이다’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진실이 아니다. ‘대충 옳다’ ‘어느 정도 정의이다.’라는 말도 성립될 수 없다. 뇌물을 10억 원 먹은 자는 불의하고, 1억 원은 괜찮다는 말도 성립될 수 없다. 의와 불의는 양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의 문제이다.

진실함이란 영혼의 얼굴이다. 그것이 빠지면 모두가 가면이 된다. 그대가 멀리 할 자는 그대의 반대자가 아니라 가식의 탈을 쓴 자이다. 소위 희극이란 말과 행동 사이에 진실이 빠진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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