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워커홀릭

2013-10-25 (금)
크게 작게
민병임(논설위원)

해외만화사이트 ‘도그하우스 다이어리’는 세계은행과 기네스북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특징을 담은 이색지도를 선보였다. 단 한마디의 키워드로 그 나라를 나타냈는데 23일 알려진 바에 의하면 미국은 ‘노벨상’과 ‘잔디 깎는 기계’, 한국은 ‘워커홀릭’이었다.

북한은 ‘검열’, 중국은 ‘이산화탄소 배출과 재생 가능한 에너지’, 일본은 ‘로봇’, 러시아는 ‘라즈베리와 핵탄두’, 인도는 ‘영화’, 프랑스는 ‘관광’이 키워드라고 한다. 이 중 한국의 키워드인 ‘워커홀릭’(Work-a-holic)은 미국에 사는 한인들에게도 해당된다 하겠다.


work(일)과 alcoholic(알코올중독자)의 합성어인 워커홀릭은 일을 안 하면 마음이 불안하고 외로움을 느끼기 때문에 일에 의존하는 증상을 말한다. 1980년대 초부터 쓰이기 시작한 용어로 보통 1주일에 60시간 넘게 일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한국이 세계 최고 일 중독 국가로 선정된 것은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이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워커홀릭은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지만 알코올, 약물 중독처럼 벗어나기 어려워 건강을 해칠 때가 많고 가족이나 대인관계에서도 문제가 되어 별로 바람직한 단어는 아니다.

그런데 요즘 같은 불황에서는 일에 빠져 사는 워커홀릭이 부럽다는 말도 들린다. 일상용어조차 사회환경에 따라 대접받는 것이 달라지는 것이다. 불황시대에 워커홀릭이 주인공이 된 드라마나 영화는 주위사람들에게 일하고 싶다는 열정을 심어주고 성공을 위해 가족관계나 사생활을 포기해도 일단 이해를 하고 그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 이들 워커홀릭은 야근과 연장근무에 대한 댓가도 정당하게 받아내어 회사에 무조건 착취당하지도 않는다.

20여년 전 한인들을 대상으로 기획특집기사를 위한 무작위 전화 인터뷰로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하면 “잠 좀 푹 자고 싶어요”. “새벽시장에 나와 가게 문 닫을 때까지 앉을 시간도 없이 바빠요,”, “지금 가장 큰 소원이 잠자는 거요” 하면서 이구동성으로 수면부족을 들었다. 그만큼 자신이 노력만 하면 돈을 벌수 있는 일자리가 있었던 것이다. 또 워커홀릭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남편 일자리 좀 알아봐줘요”, “밤에 일해도 되는데....”, “투잡이 아니라 쓰리잡도 뛸 수 있어요.” 하는 호소를 자주 듣고 있다.

그래선지 ‘워커홀릭’이 한국의 키워드라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일을 많이 하는 나라, 도서실에 불이 꺼지지 않는 나라는 발전을 향해 달려가지, 결코 퇴보하지 않는다.

한편 미국의 키워드인 ‘노벨상’은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손꼽힌다. 1895년 노벨재단이 설립된 이래 1901년부터 노벨상이 주어졌으며 2013년까지 미국 342명, 영국 121명, 독일 104명, 프랑스 54명이 수상자를 배출했다. 수상에 독보적인 존재인 미국의 키워드에 노벨상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또 하나,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잔디 깎는 소음에 익숙할 것이다. 2004년 미 소비자제품 안전협회 보고서는 잔디 깎는 기계사용과 관련된 부상으로 병원 응급실을 찾은 사람이 23만500명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사고도 많다.

지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발생한 최악의 불경기로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가 폭증했고 실직, 빈곤이 집을 잃게 하며 미국 중산층이 무너졌다. 연방정부 폐쇄와 부채한도 증액 협상, 잠시 미뤄진 예산전쟁 등으로 노동시장이 더 이상 휘청거리지 않기를 바라는 이 시점에서 한국의 키워드 ‘워커홀릭’이 미국의 키워드에도 포함되면 어떨까.

고용시장이 활발해지면서 장기 구직자들이 직장을 찾고 워커홀릭에 빠지면 3억이 넘는 인구가 사는 미국이 엄청 달라질 것이다.
‘워커홀릭!’ 예전에는 문제 있는 단어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일자리만 있다면야‘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새롭게 다가온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