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 방울 한 방울 물이 바위를 뚫는다

2013-10-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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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전쟁에서 숱한 사람을 죽였다. 살인을 위해 다른 사람과 결투를 신청했다. 도박으로 돈을 크게 잃은 적도 있다. 간음을 했고 사람을 속이기도 했다. 그리고 기만, 절도, 만취, 폭행 등 내가 저지르지 않은 죄악은 거의 없다. 이 무렵 나는 허영심과 이욕(利慾), 오만한 마음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저작도 했다. 목적인 명예와 돈을 얻기 위해 선을 감추고 악을 드러내야만 했다.

그런데도 박수까지 받고 있었다. 최고의 음식과 저택, 여자들과 화려한 사교계를 마냥 누비고 다녔다. 나는 뜻도 모르고 무작정 배웠고 무조건 가르쳤으며 마구잡이로 글을 써 갈겨댔다. 그리고 나이 50에 들어서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지위가 올라가고 돈과 명성도 얻게 됐다. 그는 “인생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그가 바로 저 유명한 19세기 러시아의 사상가이자 대문호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다. 그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난잡하고 추악하며 퇴폐적인 삶을 살았다. 훗날 그가 세계 문학의 거장이 된 것은 바로 책을 더욱 많이 접하면서 삶이 변화돼 나온 결과였다. 그는 “인생최고의 즐거움은 베푸는데 있다.”고 하였다.

방탕하던 인생이 이처럼 새롭게 변화된 걸 보면 책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 가를 실감하게 된다. 책은 인생의 보화라고 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책을 소홀히 하는 것은 마치 보물을 놓치는 것과 같다.

책이 인생의 길을 열어주고 길잡이가 되어주며 삶의 좌표가 된다는 사실은 이미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훌륭한 대통령이나 정치가, 과학자 등이 위대해진 것은 모두 책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에서 과연 얼마나 책을 가까이 하고 있는가. 알면서도 자주 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UN 조사자료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문맹률은 선진국 수준인데 반해 독서량은 후진국 수준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인이나 일본인들이 일년에 7권의 책을 읽는 동안 한국인들은 1권정도 밖에 읽지 않는다는 통계결과다. 얼마 전 조사에서도 한국인은 일년에 1권이 채 못 되는 0.8권으로 독서량이 세계 순위 166위를 기록했다.
저자가 한 권의 책을 만들자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소모되는가. 오랜 세월을 거쳐 모은 경험과 지식을 통해 한 권의 책을 만드는데 우리는 단 두 세 시간 만에 그들이 보여준 수많은 지식과 지혜를 쉽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저런 이유로 책을 가까이 하지 못한다.

한 방울의 물이 넓은 바다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책을 가까이 하지 않고 어찌 훌륭한 족적을 남긴 위인들의 삶을 배울 수가 있으며, 또 잘 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한 방울 한 방울 물이 바위를 뚫는다. 아무리 바빠도 조금씩 조금씩 책을 접하다 보면 훗날 자신도 모르게 지식이 쌓여지고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모종의 튼실한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의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권의 ‘국가론’을 쓰기 위해 158종에 달하는 그리스국가의 제도를 연구했다. 그가 남긴 저서는 무려 1,000권에 달한다. 그의 책에 대한 열정이 어느 정도였는 가를 가늠하고도 남는 일이다. 그가 어떻게 이런 큰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철학사상에 “정사각형이 정도다.” 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가장 훌륭한 제자 알렉산더는 금을 스승에게 마차 두 대분을 바쳤다. 그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수많은 책을 수집, 집필했으며 최대의 서가를 만들었다. 후세에 역사가들은 “만약 알렉산더가 계속 스승 밑에 있었다면 그를 세계 끝까지, 아니 하늘에서 빛나는 천체에까지 무한공간의 깊은 끝까지 데려갔을 것이다. 그는 과학을 위해, 전 인류를 위해 이 세계를 정복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지혜 지식의 보고이자 저수지인 책을 좀 더 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말이다. 왕은 나라를 지배하지만 책은 역사를 지배한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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