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것이 단심기둥인 까닭

2013-10-2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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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그러니까 내주는 공부가 없군요. 그렇지요?” 어떤 학부모의 질문이다. “공부합니다. 맨하탄에서 행사에 참가하며 거기서 공부합니다.” 그 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바로 내주 말 코리안 퍼레이드가 있다는 예고가 이미 오래 전에 있었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공부란 무엇인가. 책, 공책, 연필 그리고 교실을 떠나서는 할 수 없는 것이 공부인가.

신문지상에 이 행사에 한 번도 빠짐없이 참가한 본교의 기사가 났다. 실은 딱 한 번 빠졌지만, 그 때는 행사의 주최와 주관문제로 시끄러울 때였으니 예외가 될 수 있다. 그럼 왜 매년 이 행사에 참가하는가. 그 이유는 학습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한국인의 긍지를 느끼게 하고 싶은 것이다. 활개 펴고 여기서 살게 하고 싶은 것이다. 한복을 입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맨하탄의 차도를 걸을 때의 느낌을 체험시키고 싶다.


우리는 우선 차도를 걷고 싶다. 처음 몇 년을 줄 서서 걸어봤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친구들, 예행연습 시간도 없는 현실 등은 질서는커녕 규율도 통일도 없이 몰려다니는 모습일 수밖에 없었다. 생각 끝에 단심기둥을 만들기로 하였다. ‘단심’이란 정성스러운 마음이다. 여럿의 정성스러운 마음이 담긴 긴 헝겊 띠를 기둥에 모아서 묶었다. 어린이들 각자는 기둥에 묶인 긴 헝겊 줄을 붙들고 행진하도록 계획하였다.

이 방법은 매우 성공적이다. 첫째, 예행연습이 필요 없다. 둘째, 단심기둥에는 정신적인 뜻이 있다. 셋째, 여럿이 한 마음이 된다. 넷째, 참가자의 불안감이 없다. 다섯째, 참가자들이 서로 정다워진다. 여섯째, 보기에 아름답다. 일곱째, 행렬에 오래 머물 수 있다.

이 행사에 참가할 때 여러 가지를 생각하였다. 행사 전체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섞여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야 하겠다. 가능한 한 행렬에 머무는 시간이 연장되도록 하겠다. 길 양편에 늘어선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겠다. 행사가 끝나면 참가한 학생들이 제각기 글짓기, 동요쓰기, 그림그리기 등으로 종합적인 정리를 하도록 권장하여 행사의 정리를 하겠다. 등등…….

또한 이 행사에 참가한 가족에게는 한식 ‘점심식사권’을 발행하는 것이 본교의 전통이다. 우리의 가정생활은 가족이 한 자리에서 식사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이 날은 아예 ‘한국의 날’로 정해서 온가족이 한국문화에 푹 젖기를 바란다. 이런 모든 계획은 한인사회의 행사를 교육 자료로 활용하는 학교 계획에 따른다.

“아이고 열 몇 블록을 걷다니… 저희는 기권 하겠어요” “그럼 그 때 기권하시더라도 참가해 보세요.” 네 살, 다섯 살 어린이까지 한마디의 불평 없이 긴 거리를 기쁘게 신나게 행진하였다. 학교의 방침 중의 하나는 맨하탄 차도를 활개 치며 걷게 하는 것이다. 이럴 때 느끼는 마음이 점점 성장하기를 바란다. 말하자면 한국문화 사랑과 긍지의 씨앗을 뿌려서 차츰차츰 자라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최자 측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었기 때문이다. 그 멍석 위에서 재주를 부리는 것은 참가자들의 연구에 달렸다. 하여튼 이 행사는 본교 커리큘럼의 중요한 부분이며, 본교 홍보의 기둥이 되었다. 한국역사책을 펴보니, 그 옛날에도 단심기둥돌기를 하는 사진이 있어서 반가웠다.

우리는 생각하면서 매일을 살고 있다. 그래서 한국문화교육의 방법도 기발하고, 새롭고, 다채롭게 발전하고 있다. 우선은 교육의 장소를 학교 교실로 생각하던 울타리를 제치고, 사회 전체를 학습 장소로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교육하는 시간에는 제한이 없음도 깨닫게 되었다. 교육은 어느 정해진 시간대에만 할 수 있는 작용이 아니다. 코리안 퍼레이드는 리트머스 시험지이고, 그것이 보여주는 반응 결과는 한국문화교육의 긍정적인 성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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