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행복한 항심(恒心)은 호기심”

2013-10-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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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상(전 언론인)

“행복한 항심은 호기심이다.(The constant happiness is curiosity.)” 201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캐나다 단편소설작가 앨리스 먼로(82)의 말이다. 최근 여성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한국의 서울 동부지부 유 모(46) 부장판사는 지난해에도 60대 여성 증인을 신문하던 중 진술이 불명확하게 들리자 “늙으면 죽어야 해요”라고 막말을 해 견책 처분을 받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죽어야 할’ 사람은 늙은이가 아니고 호기심을 잃어버린 ‘산송장’이 아닐까. 동심을 잃어버린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을 포함한 중장년들 말이다. 노래를 잃어버린 새 카나리아는 카나리아가 아니라고 하듯 모든 것 모든 일에 대해 호기심을 품는 동심을 잃어버리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처럼 매사에 호기심에 찬 동심에는 자연적인 태생의 배려심과 직관력도 있는 것 같다.


앞에 언급한 유 부장판사의 직설법과는 전혀 다른 직관의 직설법의 한 예를 들어보자. 지난 5년 동안 자기를 밤낮으로 늘 돌봐주신 외할머니가 하루는 “내가 이제 늙어서 힘이 드는 구나” 한탄하시는 소리를 듣고 다섯 살짜리 외손자가 “할머니, 걱정 마. 할머니는 버리지 않을 거야” 하더란다. 막내딸 네가 최근 뉴욕에서 뉴저지로 이사 오면서 오래 된 물건들을 버리는 것을 눈여겨봤던 모양이다.

또 하루는 한국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예비학교(Pre-school)에서 한국말이 서툰 한 급우가 방귀가 뭐냐고 묻자 ‘burping at the bottom (아랫도리로 트림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우리 외손자의 말을 옆에서 듣고 선생님이 배꼽을 쥐셨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 읽은 동화 ‘쪼끄만 까만 수탉’ 이야기가 생각난다. ‘꼬꼬댁 꼬끼오’ 하고 쪼끄만 수탉 한 마리가 아침이면 닭장 위에 올라서서 울었다. 때로는 ‘꼬꺄독 꼭꾜’ 하기도 했지. 제 목청이 얼마나 좋은가 뽐내면서. 그렇지만 이 조그만 수탉은 제가 살고 있는 닭장이 구질구질하고 지겨워졌다. 그는 제 몸이 새까만 대신 번쩍 번쩍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빛이었으면 했고 좁은 닭장을 떠나 넓은 세상을 구경하고 싶었다. 울기만해서는 안 되겠다 생각하고 하루는 큰 맘 먹고 닭장을 떠나 세상 구경하러 나섰다. 그리고 한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마을 성당 신부님이 성당의 성탑 꼭대기에 세울 바람개비를 주문하러 상점에 들렸다.

“신부님이 원하시는 물건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라고 하면서 가게주인아저씨는 이 조그만 수탉을 가리켰다. “꼬끼오 댁 꼬기어” 하고 그는 좋아서 목청껏 외쳤다. 곧 이 수탉은 성당의 탑 꼭대기에 왕자처럼 올라앉아 세상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자 혼자인 수탉은 외로워졌다. 이것이 황금빛으로 근사하게 높이 올라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는 댓가(代價)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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