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이몽룡과 춘향

2013-10-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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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구(공연예술가)

“깊고 긴 두 청춘남녀의 키스, 십대들의 성적 욕망을 표현한 것 같지가 않다. 미학적이긴 한데 덜 로맨틱 해 보인다.” 현재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세익스피어작 ‘로미오와 줄리엣’에 관한 뉴욕타임스 비평 중 일부이다.

불꽃을 뿜어내는 스펙터클한 무대장치와 스타 배우를 캐스팅 했지만 평단의 기류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NY1 TV리뷰 역시 “첫 키스를 하기도 전에 파멸을 맞았다”며 점수를 후하게 주지 않았다. 이번 브로드웨이 쇼는 백인 로미오(올란도 블룸)와 흑인 줄리엣(콘돌로 라샤드)을 통해 두 가문의 적대적 갈등을 인종갈등으로 표현하고자 한 연출가(데이비드 러보)의 의도가 투영되었다.


뉴욕타임스의 키스 씬 묘사를 읽다보니, 판소리 춘향전의 몽룡이 ‘궁’자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생각 난다. 소년 16세 이몽룡은 “창덕궁, 아방궁, 수정궁, 이궁저궁 다 버리고 나와 함께 합궁” 하자며 사나운 말이 암말 덮치듯 14살 춘향의 다리를 취했단다. 이 또한 10대들의 호방한 기질이라 보기도 그렇고 딱히 아니라 그러기도 그러하다. 분명한 건 화학적 교감을 실험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키스나 이도령과 춘향의 화려한 방중술도, 인체 신경 호르몬의 상관관계에서 바라본다면 그 또한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춘향전의 캐릭터를 분석 해 보면 십대들의 행동 양식의 일면도 볼 수 있게 된다. 인지 심리학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하지 말라면 더하고 싶다”는 우리 옛말처럼, 부모들의 반대나 사회적 금기사항들이 이 청춘남녀들 자석처럼 더욱 밀착시키는 하나의 원인을 제공한다.
원수가문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신분제 사회의 굴레에 놓인 이몽룡과 춘향의 상황이 딱 그 예라 할 수 있다. ‘한 치의 두려움이 없는 단순 명쾌함’ 이 또한 십대들의 특징일 수 있겠다. 가사상태의 줄리엣을 보고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바로 눈이 뒤집혀 음독자살을 하는 로미오, 곧이어 뒤따라 바로 자살을 하는 줄리엣. 이들에게 부모님, 학교 그리고 그들의 행동이 미치게 될 사회적 파장에 대한 고려가 있었겠는가? 이들에게는 사랑이라는 명제와 두 사람 사이의 관계 이외에는 다른 그 무엇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춘향의 어여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얗게 되며, 발길에 밝히는 치맛자락도 쫙쫙 찢어서 도련님 앞에다 내던지고, 작은 거, 큰 거울을 모두 들어다가 문밖에다 와당탕 때려서 와그르르 탕탕 내던지고는 “야, 몽룡아! 너 지금 농담이야, 실담이야, 패담이야! 너 누구 죽어 나자빠지는 거 구경하고 싶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놈의 사랑이 문제다. 사랑하기에 살아가는 것이고, 또 사랑하기에 죽겠는 것이다. 어찌 보면 사랑하는데 무슨 다른 이유가 있냐는 십대들의 모습이 이것저것 재고 논리로 재단하려는 어른들의 그것보다 본질에 가까운 지도 모르겠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하였다는 그 길고 깊은 키스를, 춘향과 몽룡이 함께 부르던 그 궁자 노래를 밤을 세어가며 해 보는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 지는 이만 해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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