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리 없는 축구선수

2013-10-1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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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아동문학가 / 목사)

뉴저지 주 노스 헤일든(North Haledon)의 맨체스터 고교 7학년 홀게 다이크센 군(16세)은 극심한 장애아이다. 생후 14개월에 세균 감염으로 피부가 썩어 들어가 두 다리와 오른 팔을 절단하였다. 그래서 의수 의족(義手 義足)으로 생활한다. 본래 파나마 출신인데 페이 다이크센 여사가 그를 입양하여 키웠다. 호손(Hawthorne)에 위치한 아동 의료복지재단이 22명의 파나마 어린이를 미국으로 입양시킬 때 다이크센 군도 끼어 있었다.

시즌을 마무리하는 양키즈 경기에 같은 파나마 출신이며 금년 은퇴하는 투수 마리아노 리벨라 선수가 다이크센 군에게 시구를 시켜 이 소년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다이크센 군은 고등학교의 축구 선수이다. 다리 없이 의족으로 차지만 남들보다 더 멀리 찰 수 있고, 팔 없이 의수를 흔들며 달리지만 정상적인 친구들보다 더 빨리 달린다. 자기의 노력에 주변의 도움이 더해지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 다이크센 군이다.


이 세상이 고통의 바다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고통을 이길만한 힘을 주신다는 것도 사실이다. ‘당황하고 겁먹은 코끼리는 개구리에게도 걷어 차인다’는 힌두 격언이 있다. 능력이 있어도 자기의 힘을 다 발휘하지 못하며 사는 사람이 있고, 자기의 힘을 충분히 발휘하는 사람이 있다.
결단력과 실천력의 차이이다. 톨스토이는 “이 세상에 발전이 있다면 반드시 그 배후에는 고통 받는 사람의 수고가 있다.”고 말하였다. 내가 그런 배후의 힘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성 프랜시스는 “당신의 아픔 자체가 기도가 되게 하라.”고 하였다. 기도는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나의 고통이 하나님께 상달 될 수 있는 훌륭한 기도라는 뜻이다. 세익스피어는 “치통을 지긋이 참아보지도 못하고 철학가가 될 수는 없다.”고 하였다. 깊이 있는 사색도 고통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무자비 한 것 같아도 팽이는 쳐야 돌아간다. 편안하면 곧 쓰러진다.

영어에 ‘frastrate’란 말이 있다. ‘좌절하다’라는 뜻인데 라틴어의 ‘frustra’에서 나왔다. 그 뜻은 ‘헛되다’이다. 자신의 노력이 헛된 것처럼 느끼는 것이 좌절이다. 나의 과거나 현재를 헛되게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헛된 것은 하나도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내가 한 모든 일은 나에게나 남에게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참을 수 없을 만한 상실’이란 있을 수 없다. 세월이 흐른 뒤에 생각하면 어떤 상실이든 다 참을 수 있고 극복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좌절도 극복도 마음의 문제이다. 사업에 실패하고 좌절에 빠졌다면 사실 그것은 있던 돈이 눈앞에 안 보인다는 물질적이며 외형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 사건을 당하는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실연한 소녀가 실망하고 있다면 그것은 애인이 떠났다는 문제보다 자기 자신에게 절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슬기로운 사람은 외부의 사건이나 상실 때문에 자기의 영혼을 도둑맞지 않는다. 고통을 당하면 온갖 수치를 다 드러내는 사람이 있고 차분히 싸우는 사람이 있다. 사건을 당하면 놀라지 말라. 나 자신의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않도록 단정하게 마음을 가다듬어라. 내 마음이 밑으로 쳐질 때는 무엇인가를 하라. 그래도 밑으로 떨어지면 조금 다른 일을 하라. 멈추어 주저앉는 것은 금물이다. 반드시 길은 있다.

고통은 우리의 양심을 일깨워 주며 고통을 통하여 우리는 가장 좋은 기도를 배운다. 고통을 거친 마음은 강해진다. 그것은 성장의 필수 과정이다. 풍요는 구약성서가 말하는 축복이다. 신약성서는 환난이 더 큰 축복이라고 말한다. 풍요는 두려움과 재난의 씨가 된다. 그러나 고통은 위로와 희망의 씨가 된다. 고통 없는 승리는 없고 환난을 거치지 않은 영광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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