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난 그리고 희망의 신학

2013-10-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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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독일엔 유명한 신학자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나치에 항거하며 고난과 함께하다 39세에 요절한 디트리히 본회퍼(베르린대교수)목사요 또 한 사람은 희망의 신학을 세계에 선포한 위르겐 몰트만(87·튀빙겐대명예교수)박사다. 두 사람의 신학은 지금도 개신교의 신학도와 목회자들에게 또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옥중서간>과 <나를 따르라> 저자로 잘 알려진 본회퍼는 나치의 수장 아돌프 히틀러 암살단에 가입해 활동하다 체포(1943년 3월)된 후 옥살이 중에 교수형(1945년 4월9일)에 처해졌다. 그는 살아있으면 107세(1906년생)가 된다. 그의 신학은 그리스도를 입으로만 따르는 값싼 은혜를 거부한 고난과 함께 동참하는 신학이다.
나치 당시 독일교회는, 히틀러를 사회구원을 이루기 위해 나타난 그리스도로 추앙했다. 이런 독일교회에 반대해 그리스도의 양심을 지키고 반나치 운동을 일으키려는 본회퍼를 포함한 젊은 신학자와 목사들이 ‘고백교회’를 창설했다. 고백교회는 그리스도를 따라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히틀러를 구세주로 알고 따른다며 그들을 비판했다.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운동과 고백교회로 인해 비밀경찰의 추적을 받는 어려움 중 망명할 기회가 있었다. 뉴욕 유니온신학대 교수 라인홀드 니버가 교수 자리를 만들어(본회퍼는 유니온신학교에 와 공부한 적이 있다) 그를 초청했다. 그는 거부했다. 혼자만 살 수 없으며 하나님은 고난 받는 자와 함께 한다는 그의 신앙 때문이었다.
또 고난 받는 독일 국민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전쟁이 끝났을 때 독일교회를 재건하는 일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본회퍼는 유언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의 묘비엔 “디트리히 본회퍼-그의 형제들 가운데 서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라고 적혀 있다.

본회퍼보다 20년 늦게 태어난 위르겐 몰트만(1926년생)박사. 그는 지난 10월2일 한국의 서울신학대에서 명예신학박사학위를 받은 후 석좌교수로 위촉됐다. 이날 그는 기념강연을 통해 “인간의 삶에는 늘 고난이 있지만 그게 전부도, 마지막도 아니며 언젠가는 기쁨과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한다”며 희망을 강조했다.

이어 “기독교는 성탄의 기쁨, 부활의 영광 같은 기쁨의 종교지만 십자가의 고통과 고난 같은 잔인한 죽음의 상징도 있다”며 “고통과 슬픔을 이기는 것은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고백이 아니라 그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예수가 고난을 당했지만 결국 승리한 것처럼 그의 고난에 동참하면 오히려 부활의 기쁨이 주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고난당하는 하나님만이 고난 받는 자를 도울 수 있다”는 본회퍼의 말을 인용하며 “고난을 당할 수 없는 하나님은 기쁨의 하나님일 수 없다.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해진 골고다 언덕 뒤에 부활의 태양이 떠오르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 안에서 새롭고 영원한 세계의 창조가 시작하기 때문에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가 된다”고 설명했다.

몰트만이 기독교에 귀의한 것은 한 권의 성경 때문이었다. 독일군인(18세에 독일군에 징집됨)으로 2차 대전에 참전한 그는 연합군 포로가 되었다. 포로생활 3년을 지낼 때 다른 포로들은 절망으로 죽어갔다. 허나 몰트만은 미군 군목에게 우연히 성경 한 권을 받아 읽고 성경 속에서 희망을 찾았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됐다.포로에서 풀려나 돌아온 그는 신학을 전공해 박사가 되어 대학교회 등에서 목회를 한 후 튀빙겐대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다. 한국하고 남달리 인연이 깊은 그는 박정희정권 당시 민주인사교수들을 지지했고 이번엔 서울신학대학교의 석좌교수가 됐다. 21세기 최고의 거장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 성경 속에서 희망을 찾았고 생이 변했다.

본회퍼는 말한다. 이웃의 고난과 함께하는 속에서 하나님의 고통하심을 찾으라고. 몰트만은 말한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과 기다림을 사람이 된 하나님인 그리스도 안에서 찾으라고. 이들 둘은 현대 그리스도인과 만인에게 고난에 동참해 희망을 보라한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있을 수 없다. 고난과 고통 속에 새 희망이 있음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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