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술하던 날

2013-10-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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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 희 <교육가/수필가>

나는 매년 한 번씩 홀리네임 병원의 검사실에서 메모그램을 찍는다. 며느리가 예약해서 데리고 다니기 때문에, 고맙기 그지없어 꼬박 꼬박 체크 하는데, 작년 말 검사에서는 6개월 후에 다시 찍어 보자고 한다. 6개월 기다렸다가 갔더니 뭔가 이상한 물질이 보이는데 암인지 석회인지 조직검사(biopsy)를 해 보아야 안단다. 날을 받아서 조직검사를 했더니 암은 분명히 아니고 석회도 아닌데 무엇인가 비정상적인 물체가 자라고 있어서 그것도 제거하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순간 나는 아찔하였다. 아, 암이 이렇게 오는 것이구나! 그리고 그 암이 나라고 해서 특별히 지나가거나 비껴나가지 않아야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신 것이다. 갑자기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의 말이 생각난다. 그녀는 침대에 반듯이 누워서 꼼짝할 수 없는 채로 앓고 있는 결핵 척추병 환자이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했고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공평하신 분이라는 것’이다. 외과 의사를 소개 받아서 상의했더니 수술이 아주 간단하니 해버리자고 한다.


1895년 갑오경장 때에 고종 황제가 단발령을 내리자 많은 유학자와 백성들이 반대할 때,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회상(身體髮膚 受支父母 不敢?償-몸과 머리털과 살은 부모에게 받은 것이기에 감히 회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처음이니라)이라 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의 몸에 칼을 댄다는 것을 금기해 왔던 나 자신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층계에서 넘어져 팔목을 다쳐 수술한 것 빼고는 내 몸에 칼을 대서 맹장 수술이라도 한 적이 없었던 나다. 순간적으로 나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수술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To be or not to be이다.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수술을 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날짜를 정하고 드디어 수술을 마쳤다. 마취를 하고 내 몸에 분명 칼을 댔고 이렇게 잘 깨어났다.

나는 오늘 가사 암 환자가 되어 내 몸에서 자라고 있는 필요 없는 물질을 떼어내는 수술을 했지만, 일 년 후에 다시 검사해서 또 다른 암이 재생할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소설가 박완서님이 생전에 남긴 다음의 말을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다. “명은 갈수록 길어지는데 삶은 왜 이다지도 남루해 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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