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머리가 고프다면?

2013-10-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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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가(허병렬)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이 말에 익숙한 한국 생활이었다. 그런데 이곳의 어떤 학생들은 여기에 반기를 들었다. “왜 가을이 독서의 계절인가요?” “책 읽기에 좋은 서늘한 날씨니까 그렇지.” 그들은 아니란다. 봄날의 따뜻한 햇볕, 여름날의 서늘한 나무 그늘, 겨울날의 따뜻한 방안 등은 책읽기에 좋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그럼 독서하기 좋은 계절은?” 독서의 계절은 일 년 내내 계속된다고 소리친다. 학생들의 지적이 옳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표어는 ‘일 년 내내 독서의 계절’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결국, 독서하는 습관은 매일의 생활 속에 포함됨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의 50년대 말이나 60년대 초는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처를 구경한 사람들의 여행 보고회가 심심치 않게 열렸다. 그때마다 쫓아다니며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있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 그 중 교육자 한 분의 보고회에서 들은 말 한마디는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다. 바로 ‘머리가 고프다’는 표현이다.

그 분이 미국에서 각 학교를 시찰하면서 여러 어린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은 체험담이다. “어린이는 무엇을 먹고 이렇게 보기 좋게 자랐나요?” 이 질문을 받은 어린이의 답이 돌아왔다. “내 몸은 영양 좋은 음식물을 먹고 자랐어요. 또 내 머리는 재미있는 책을 읽고 자랐어요.” 그 어린이는 자기의 머리와 몸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이렇게 대답을 하였고, 이어서 “내 머리는 책을 읽지 않으면 ‘머리가 고프다’고 소리 친다”고 덧붙여 설명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배가 고프다, 머리가 고프다, 마음이 고프다, 친구가 고프다...등의 표현도 가능할 것 같다. 머리가 고프지 않으려면 책을 읽는다는 말은 아주 현명하다. 그런데 왜 배가 고프면 곧 음식을 먹으면서, 머리가 고픈 것에는 그렇게 예민하지 못할까? 아마 독서가 생활 습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독서의 영향이 뚜렷하게 생활의 표면을 좌우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겉모습일 뿐이다. 독서의 영향은 일상생활 각 분야에 뚜렷한 작용을 하지만, 대부분이 내면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독서가 값지다는 설명은 아니다. 독서가 중요한 까닭은 무엇인가. 요즈음 인성교육을 부르짖는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아무리 지식이 많더라도 ‘사람됨’이 이에 미치지 못하면 소용이 없음을 말하고 있다. 그 사람됨이란 성장하면서 이루어진다. 부모의 가정교육에 많은 영향을 받지만, 독서의 영향이 매우 크다. 그래서 좋아하는 책, 좋은 책을 골라서 꾸준히 읽게 된다.

독서력의 기초는 젖 먹을 때부터 시작 된다. 엄마가 그 옆에서 책을 보면서 들려주는 동요나 동화의 뜻은 모르지만, 읽는 소리의 높낮음에 익숙하게 된다. 그리고 차츰차츰 말의 뜻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의 내용에 흥미를 느끼다가, 독해력이 생기면서 좋아하는 책을 골라서 읽는 단계에 이른다. 즉 추천 도서나 재미있는 책읽기로 출발한 독서는 읽고 싶은 책, 필요한 책읽기로 발전한다. 이런 과정에서 인성 발달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 필자도 어렸을 때, 성장기에 감명 받은 책 내용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음이 독서의 영향력을 말한다.

학부모 문예반에서 나온 글 중에 슬기로움을 느끼게 하는 글이 있었다. 어린이는 한글책 읽기, 엄마는 영어책 읽기를 서로 겨루자는 내용이었다. 재미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에 따라 승자에게 꼭 메달을 줄 것이다.

머리가 고프지 않게 독서를 하고, 사계절을 독서하기 좋은 계절로 생각한다면, 즐거운 나날을 보내며 독서량을 증가시킬 것이다. 독서는 인생을 즐기고, 생각을 넓히고, 많은 친구를 사귀고, 나 자신을 풍부하게 하면서 하루하루를 즐길 수 있는 방법 중 첫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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