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의 날

2013-10-01 (화)
크게 작게
손영구(이승만대통령 기념사업회 미주총회장/ 목사)

오늘은 한국이 살아 남을 수 있도록 장치를 만든 한미상호방위조약(The ROK-US Mutual Defense Treaty) 체결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승만대통령은 미국에서 40년간 살면서 독립운동을 주도적으로 해오다가 나이 70세이던 1945년, 꿈에도 그리던 해방을 맞이하여 한국에 들어간다. 귀국하자마자 3년 동안 암살의 위협 속에서도 당파싸움으로 점철된 한국에, 미국에서 배운 자유민주주의를 심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리하여 유엔 감시하에 1948년 5월10일 총선거를 실시했으며, 반만년의 역사의 물꼬를 왕정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어 놓는 혁명적 사업을 이룩했다.

1948년 7/17 헌법제정, 7/20일 대통령선거, 7/24일 이승만 초대대통령 취임, 8/15일 광복절에 대한민국을 탄생시켰다. 나라를 세웠지만 나라 안에는 가난과 공허, 무질서, 문맹, 황폐, 혼돈, 정치싸움, 이념 갈능이 만연하여 신생 대한민국이 자라기 위한 조건은 너무도 나빴다.


조금 배웠다는 사람은 김일성과 손잡고 통일을 하자는 친북좌파들로 활동했고, 국민 80%가 문맹자였다. 2년 후는 6.25전쟁이 터졌다. 싸울 군대도 조직되지 못한 상태였으니 신생 한국은 살아남기 더욱 어려웠다. 이승만대통령의 강력한 지도력과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유엔군 총사령관, 미8군 사령관들과 군 작전을 논의함으로써 3년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서 승리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국토의 80%가 폐허가 됐다. 이 민족이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은 열강인 미국의 도움 없이는 안된다고 간파한 이승만대통령은 미국과 한미원조조약과 한미상호 방위조약을 맺었다.

원조조약으로 많은 원조를 받아 복구작업을 하였고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주한 미군이 오늘날까지 한반도에 주둔하여 북한정권이 전면전을 일으키지 못하게 한 것이다. 한미동맹으로 전쟁 발발 시는 즉각 주한미군 뿐 아니라 69만 병력이 한국에 파견되고 2,000대의 항공기가 투입되고 160척의 함정이 한반도를 감싸게 되어 있다.

이승만대통령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백선엽장군은 말하기를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이승만대통령의 벼랑 끝 전술에 의한 것으로 이는 북한방어, 소련저지, 중국봉쇄, 일본견제의 4중 장치로서 대륙국가에서는 아시아에서 최초의 방위조약이다.”라고 했다. 지난 60여 년간 북한의 많은 도발, 테러, 간첩남파, 비행기납치, 비행기폭파, 육영수여사 저격, 아웅산테러, 천안함폭침, 연평도폭격 등의 만행이 있었지만 주한미군이 있는 한 한반도에는 전쟁이 없다는 인식으로 외국자본이 계속 한국에 머물러 기업이 운영되어 오늘의 산업화 한국이 된 것이다, 이는 이승만박사의 탁월한 예지력과 판단력 덕분이다.

한미동맹으로 오늘의 한국이 있게 된 것을 젊은 세대에게 교육하며 미국의 은혜를 잊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우리세대에 있다. 한국의 종북좌파, 친북반미주의자, 빨치산투쟁자들은 미국과 미군을 원수 시, 백안시하며 주한미군철수, 한미동맹해체, 우리민족끼리 통일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월남처럼 한국을 망하게 하겠다는 전략과 전술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 자들이 국회의원 중에도 많이 있다. 이승만대통령, 박정희대통령이 노심초사, 혼신의 힘, 사생결단하면서 만들어 놓은 장치를 허물어 버리고 망하는 일이 한국에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