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맘(Mutti) 리더십

2013-09-25 (수)
크게 작게
여주영(주필)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역사에서 최초로 독일통일을 이룩했던 정치가로 훗날 ‘철의 재상’으로 불리운다. 독일 국왕 빌헬름 1세가 군비확장 문제로 의회와 충돌하던 때, 프로이젠 총리에 오른 그가 첫 취임 연설에서 “현재의 큰 문제는 언론이나 다수결에 의해서가 아니라 철과 피에 의해서 결정된다”며 ‘철혈정책’의 의지를 강력하게 주장, 이를 계기로 붙여진 별칭이다.

실제로 그는 독일황제 빌헬름 1세부터 26년간 국왕을 모시면서 군부와 의회, 국왕의 잇단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꺾이지 않고 전략적 목표를 끈질기게 추진, 당시 열세에 있던 독일의 안보를 지켜내는데 성공한다. 그의 이런 추진력으로 자제력이 부족한 빌헬름 2세와 마찰을 빚으면서 결국 해임을 당하자 그동안 문제가 없었던 독일이 불리한 상태에 놓이면서 마침내 세계 제1차 대전 발발과 함께 독일패배 라는 엄청난 재앙을 맞게 된다.

오늘날 역사가들은 당시 그가 행한 강력한 추진력이 독일을 강대국 반열에 올려놓았다며 대체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소통과 관용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독일은 이제 마치 비스마르크의 단점을 보완이나 하듯 강력하고 부드러운 성품의 여성 총리 앙켈라 메르켈이 이번 3선연임에 성공, 세계 각국의 주목을 끌고 있다. 그녀는 2005년부터 총리로서 강인함과 뚝심, 추진력에 있어 영국의 마가렛 대처수상을 많이 닮았다고 하여 ‘독일판 철의 여인’으로 불린다.
대처수상은 1976년 영국이 포틀랜드 섬을 두고 아르헨티나와의 전쟁 시 마치 전사 같은 모습으로 켄싱턴 타운 홀에 나와 ‘영국이여 깨어나라(Britain Awake)’ 라는 제하로 구소련의 군사적 야욕을 비판하는 연설을 비장한 어투로 해서 당시 소련의 한 신문은 그녀를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이라고 혹평, 대처리더십의 상징적인 키워드 ‘철의 여인’이 이때 등장한 것이다.
메르켈 총리도 강력한 추진력으로 열세에 있던 독일의 경제를 부흥시켜 지금의 독일을 유럽의 최강자로 만들어 놓았다. 메르켈은 말한다. “여성인지 남성인지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행동하고 노력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녀를 두고 독일에서는 ‘엄마’라는 칭호로 ‘맘(Mutti/ Mom) 리더십’의 소유자라 부른다.

메르켈의 이러한 리더십은 그녀가 최근 유대인 대학살의 정치범 수용소 추모관을 방문, 깊은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사죄하는 모습에서 잘 드러나 있다. 여러 면에서 이번 메르켈의 3선 성공은 이 시대가 여성 리더십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신호탄이 아닐까.

그동안 남성 리더십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큰 원인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남성 지도자들은 스캔들 투성이고, 금전문제, 부패, 병역특혜, 탈세 등. 그러나 여성리더들에겐 그런 문제가 거의 없고 대체로 순수하고 투명하며 남성보다 헌신적이고 겸손한 편이다. 메르켈 총리의 이번 연임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몇 안 되는 지지층 앞에서 당선 소감을 발표하는 그녀의 소박함은 감동 그 자체였다.

여성리더십이 요구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원칙에 입각한 리더십일 것이다. 대체로 여성이 남성보다 원칙에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요즘 박근혜 대통령은 원칙에 입각한 리더십으로 나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침몰하는 영국 경제를 살려낸 대처수상의 지도력이나 요사이 힐러리가 차기 미국 대통령 감 1순위로 떠오른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독일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을 롤 모델로 꼽았다. 실제 박 대통령이 그동안의 정치행보에서 보인 당찬 추진력, 내면의 부드러움, 그리고 원칙에 충실한 리더십을 잘 융합한다면 한국의 발전과 번영은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햇빛이 그림자를 끌고 간다’는 말이 있다. 그렇듯 박 대통령이 통합의 리더십으로 국민들을 잘 이끌어 가기를 기대해 본다.
juyoung@koreatimes.com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