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십(gossip)이라는 것

2013-09-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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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석(정신분석/ 정신과 전문의)

최근 20대 한 여성이 불안증과 우울증을 호소하여 찾아왔다. 수개월 전에 한국에서 사는 것이 싫어 미국에 왔다고 한다. 한국에서 살기 싫은 이유를 들어보니 한국 사람들은 남의 사생활에 대한 얘기를 지나치게 많이 하고 겉치레에만 너무 신경을 쓰고 선후배를 지독하게 따지는 것이 영 싫다는 것이다.

소문이란 사람들이 나누는 일반적인 남의 얘기를 말한다. 가십 (gossip) 이란 소문의 일종인데 남의 개인적 사생활에 관한 얘기를 소문으로 나누는 것을 말한다. 이 둘은 모두 그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고받는 얘기이다.


가십은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연구 발표를 했다. 그 중에 공통적으로 인정된 것은 가십 주인공의 비도덕적인 행동을 지탄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것이 사교적으로 많이 이용된다는 사실이다.
안면 있는 사람들 사이에 공통 화제를 제공하고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가십대상이 사회적으로 명성이 있는 인사나 존경받는 명사일수록 빨리 그리고 널리 퍼져서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고, 파격적으로 가십의 주인공을 매장하기도 한다.

가십을 사람들이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가십 자체는 시간이 흐르면 대개 없어져 버리는데 여기에 몇 가지 파생되는 문제가 있다. 첫째는 시간이 흘러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어도 이 진실이 가십 퍼질 때와 같은 현상으로 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실 무근이라는 것이 확인이 되면 이것은 이미 가십이 아니기 때문에 사교적 가치가 없어지고 흥미를 잃어버린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진실보다는 재미있는 헛소문에 더 흥미를 느끼며 그 가십의 내용이 바람피운다던가. 섹스에 관한 것이면 걷잡을 수 없이 퍼뜨리며, 공동 화제를 만들어 신나게 즐기게 된다.

둘째 문제는 가십의 진실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들은 것을 그대로 믿고 가십의 주인공을 비난하고 모독하며 회피하는 행동이다. 끝으로 그 사람은 가십의 주인공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무의식적으로 질투와 시기심을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때야 말로 가십의 주인공을 밟고 올라서 우월감을 느끼며 즐기고자 하는 사람이다.

미국 문화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시대와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가족주의에 젖은 한국 사람들은 미국인의 개인주의적 태도가 냉정하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개인주의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가 남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그에 대해서 참견하지 않는 점이다. 이것은 장점이므로 받아들이고 이에 한국인의 따뜻하고 인정을 함께 하여 훌륭한 개인주의자가 된다면 가십이라는 문제도 사라질 것이고 한국인 사회의 많은 문제도 줄어들 것이며 우리 사회가 더 화목해지고 밝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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