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보름달과 미스 아메리카

2013-09-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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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이 차오른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넉넉해지는 듯하다. 한해 농사의 첫 결실이 맺어지고 풍성함에 감사를 나누는 시간이다. 대대로 송편을 빚었고 아낙들은 손잡고 강강술래를 돌았다. 생산, 풍요, 다산과 같은 여성성에 비유하며 달에 의미도 부여해왔다. 그랬기에 당연히 미인이라면 이런 ‘달덩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야 했다.

반면 서양의 여성성은 달 보다는 비너스(금성)에서 찾았던 듯하다. 그리스 로마신화의 비너스는 서양 여성성의 대표 아이콘이 분명하다. 수많은 회화에 영향을 미쳤고 역시 생산과 풍요의 상징이었다. 다만 동양의 그것에 비하면 보다 노골적인 아름다움을 숨기지 않았던 듯하다.

요즘 한국 처자들에게 달덩이 같다고 했다가는 눈 흘김을 당할 것이다. 우리의 여성성과 미의 기준은 달에서 비너스로 괘도가 수정 되었다. 그런데 이 비너스의 위상에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며칠 전 미스 아메리카에 뉴욕 시라큐스 출신의 인도계 아메리칸Nina Davuluri가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미인대회 입상자답게 늘씬한 용모에 대학에서 인지과학을 전공한 지성미까지 갖춘 처자였다. 그리고 자신의 장기로 ‘볼리우드 퓨전 댄스’를 선보일 만큼 자신의 정체성 또한 맘껏 드러낸다. 그와 동시에 “나는 항상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미국인으로 바라봤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듯 미국인임 또한 분명 한 처자이다. 문제는 대회 직후 트위터 선상의 댓글이 발단이 되었던 것이다.

“어떻게 씨x 외국인이 미스 아메리카가 될 수 있지? 게는 아랍인이야! 멍청이!” “네가 미스 아메리카에 당선 되려면 아메리칸이 돼야 하는 거다.” 미루어 짐작 컨데, 대다수의 아메리칸들은 팔등신 균형미에 하얀 대리석 조각의 비너스가 진정한 비너스라 생각하는 것 같다. 역대로 그런 이미지의 미인이 대다수의 수상자였으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또 대다수(?)의 미국인들의 교양 수준이 그 정도라고 치부하면 그뿐이기도 하다.

그런데 서양 역사에 나타는 비너스도 사실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 했다. 유럽 산악지대의 구석기 유물인 ‘돌의 비너스’는 국부가 극단적으로 과장되게 표현 되었다. 그런 비너스가 고대 그리스에는 정숙한 여인으로 표현되었다가, 헬레니즘시대에는 자신의 엉덩이를 바라보는 관능적이고 자유분방한 비너스로 변했고, 남녀 양성의 헤르마프로디테까지 상상력이 나갔다. 그리고 르네상스시대에는 또 다시 아름답고 관능적인 풍만한 육체를 가진 비너스가 등장했다.

인도 춤을 추는 미스 아메리카에게 ‘인도네시안 댄스’라고 댓글을 다는 수준에다, 동양 사람이면 모두 ‘차이니스’라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중국에 60여개, 그리고 인도에 50여개의 다른 민족이 공존하고, 이들이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갖고 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에 오기 전에 이 땅의 주인들이 어떤 피부색을 하고 있었는지는 굳이 말을 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그러니 그 구구한 비너스에 얽힌 수많을 사연은 송편을 다 빚을 동안 설명해도 해답이 나올 것 같지 않다. 달이 해로 바뀌어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으니 약간 우울해 지려고도 한다.

박봉구(공연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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