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역사의 파도소리

2013-09-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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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영(목사)
독일의 역사 철학자 헤겔은 역사 속의 보수와 진보를 마치 ‘파도타기(wave surfing)’로 비유하였다. 이를테면 옛날 진보라 자처하던 아날로그가 보수가 되어 진보, 디지털에 밀리고 또 유물론, 공산주의가 시장경제 민주주의에 밀린 것처럼, 여러 세대를 거치며 아들과 아비,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분쟁하는 밀물과 썰물의 역사를 보면서 헤겔의 비유를 떠올린다.

2000년 전 진보인 기독교 사상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매장시키려고 무덤을 팠던 보수 세력 유대교가 지금 지평 너머로 밀려나고 있고 한국사회 또한 보수와 진보의 분쟁으로 인해 시끄럽게 들끓고 있다. 한국기독교계도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보수는 개인구원, 진보는 사회구원을 외치며 ‘행함이냐 믿음이냐’ ‘창조론이냐 진화론이야’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하며 밑도 끝도 없는 분쟁만 계속하고 있지만 결과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독일의 진보적 성서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은 그의 저서 ‘비신화화(非神話化)’에서 역사의 긴 안목으로 말하고 있다. “급변하는 미래에 전개될 과학적 두뇌를 가진 젊은이들에게 보수 문자주의 성서주석을 그대로 답습하는 교회는 결국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고 우려하며 쓴 논문인데 한국의 근본 보수주의자들도 꼭 한번 읽어봤으면 하는 필독서이다.


근세에 의학, 신학, 철학, 음악을 두루 섭렵한 인도주의자 시바이처는 진보적 예수 연구뿐만 아니라 예수사랑을 실천하며 아프리카 오지 나병환자 치료에 몰두했고, 53년 노벨평화상도 받았지만 또 음악계에도 놀라운 업적 하나를 남겼다. 그건 ‘W.A Mozart’란 논문이었는데 그 속에서 그는 ‘wave’형식을 발견한 것이다. 이른바 천재 모차르트의 영혼 속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기쁨과 희망을 악보에 희석시킨 작곡기법인데 앞서 말한 ‘wave surfing’을 헤겔보다 먼저 구사한 시대를 앞지른 작곡가였다.

요사이도 주일마다 기쁨 없는 보수주의 밑에서 졸고 있는 교인들이 많듯이 그때의 무료했던 귀족들도 보수주의 작곡가, 샬리에리의 지루한 음악연주를 들으며 졸고 있을 때였다. 여북했으면 하이든도 ‘놀람 교향곡’을 작곡해 졸고 있는 귀족들을 깨워 줄까 시도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 시점에 모차르트는 ‘wave’형식을 발표하는데 이것을 듣던 귀족들은 드디어 긴 보수의 잠에서 깨어나 연주장은 온통 희망과 기쁨으로 들뜬 분위기를 우리도 얼마 전 영화 ‘모차르트‘에서 보았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시기한 이유도 그의 시대를 앞질렀던 ‘파도소리‘ 때문이었다.

진정한 진보는 구호에만 그친 지루한 역사를 밀어내고 찬란한 역사를 창조하고 기쁨과 희망의 역사를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진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북한공산주의 보수의 피비린내 나는 옷을 다시 꺼내 입고, 우울했던 그 시대로 되돌아가자는 것은 결코 진보가 할 일이 아니고 바보가 하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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