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출생의 비밀, 진실 게임

2013-09-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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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채동욱검찰총장이 부산지검 동부지청에 근무하던 1999년 만나 내연관계를 맺은 Y(54)씨와 사이에 2002년 아들을 낳았으며 채모(11)군은 최근 미국 유학을 떠났다. 채군이 다니던 초등학교의 기록에는 아버지 이름이 ‘채동욱’으로 돼 있다.” 최근 한국의 모 언론이 현 채동욱(54)검찰총장의 혼외(婚外)아들 의혹을 보도한 내용이다.

이에 대해 침묵하던 채 검찰총장은 사흘만에 입을 열어 “혼외아들 의혹에 대해 유전자 검사라도 받을 용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정에서 진실을 파헤치게 될 경우 채 총장은 Y씨를 상대로 아들의 친부여부를 가리는 친생자관계 존부 확인 소송을 제기해야 하며 법원은 지정한 사설업체에 유전자 검사 진행을 명령하게 된다.


출생의 비밀에 대한 진실게임이다. 보도가 사실이든, 채 총장의 말이 사실이든 둘 중의 하나는 반드시 거짓을 말하고 있다. 누가 거짓을 말하고 있을까. 현 정부에 밉상인 채 총장에 대한 보수 언론의 이번 보도는 다분히 정치게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전 국정원장을 대선개입으로 기소한 검찰에 대한 여권의 불만이 아니냐는 식이다.

어쨌든 언젠가는 진실은 밝혀질 거다. 채 총장의 혼외아들이 사실로 판명되면 채 총장은 옷을 벗지 않을 수 없다. 한 나라의 검찰의 총지휘자로서의 도덕적 품위가 손상됐기 때문이다. 언론이 오보를 냈다면 언론도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어용언론의 전락은 물론이요 알권리 오도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 함은 당연지사이다.
전에도 그랬지만 요즘은 더 심한 것 같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 하나같이 일률적인 내용이 전개된다. 재벌, 불륜, 모함, 폭력, 복수 등등. 그 중의 하나가 출생의 비밀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한국 드라마 작가는 자기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시청률이 저조해 지면 출생의 비밀 그리고 불륜을 집어넣으면 올라간다고 하니 그렇단다.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채 총장의 혼외아들, 즉 출생의 비밀을 보노라니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바람둥이들 사이에 퍼져 있다는 11계명이 있다. ‘들키지 말라’다. 혼외정사를 하던 혼외 자식을 두든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식이다. 들키지 않고 재벌가의 혼외정사로 태어난 주인공이 나중에 친부를 만나 드라마에 반전을 가져온다.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얘기다. 한국 재벌가엔 ‘혼외 가계도’란 게 있다. 그중 가장 화려한 가계도는 정주영씨가 으뜸으로 꼽히고 있다한다. 정몽준국회의원은 정주영씨의 6남이다. 그의 친모(親母)가 변중석씨가 아님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사실. 그래도 그는 혼외아들이었음에도 친아들보다 더 극진히 아버지가 아껴준 아들이다.
현대가(現代家) 뿐만 아니라 한국의 재벌 혹은 권력가 상당수가 혼외 자식을 두고 있음은 하늘과 땅이 다 알고 있다. 1970년 3월17일 변사체로 발견된 요정 접대부였던 정인숙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 아들이 암초되어 정인숙은 죽었다. 정인숙이 낳은 아들 정성일에 대한 친부에 관한 의혹은 아직도 화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간혹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한 사람만 아내가 있어야 되는 서구 기독교종교의 나라에선 혼외정사니 혼외 자식이니, 문제가 되지만 아내를 네 명이나 둘 수 있는 이슬람권에 사는 남자들에겐 그런 건 문제시 되지 않을 것이라고. 그럴 게다. 그만큼 성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대상이 많으니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뿐인가.

아내를 놔두고 혼외정사를 하는 남자들의 심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사랑(?)을 해서 혼외정사를 했다고 하자. 그래서 여자들이 아이를 배고 또 출산 할 경우 여자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돈일까. 2008년 정주영회장과 혼외자식들과의 법정 소송에서 40억여원을 배상해주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정회장은 돈으로 해결했다.

이처럼 재벌들은 돈으로 해결한다. 하지만 명예와 법의 힘으로만 먹고 사는 검사들의 총수 채동욱검찰총장은? 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아니다. 진실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혼외아들이 자신의 아들이라면 깨끗하게 옷을 벗는 게 어떨까. 출생의 비밀, 진실게임은 지구에 인간이란 종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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