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유와 관용

2013-09-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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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12주기가 지났다. 허리를 반쯤 꺽은 채 울던 사람, 피눈물이 맺혀 눈이 새빨갛던 사람, 이 모든 기억이 과거가 되었다. 하지만 매년 9월 캘린더를 넘기면 가장 먼저 11일이란 숫자가 몸속에 박힌 가시가 되어 우리를 아프게 한다. 올해도 세계무역센터 자리인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9.11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열렸고 2,983명의 희생자 이름이 호명됐다. 유가족들은 희생된 아들, 딸 등 가족의 이름이 불리면 풍선이나 사진을 들고서 “당신 잊지 않고 있어요, 나 잘 지내요”하며 천국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트리뷰트 인 라이트(Tribute in Light) 블루 레이저 쌍둥이 불빛도 그라운드 제로의 밤하늘 높이 솟아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펜타곤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희생자를 기리며 “조부모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부모, 자녀의 졸업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었던 부모, 성장하고 결혼해 자녀를 가질 수 있었던 아이들, 인생의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었던 젊은이들, 그들이 빼앗긴 미래에 대해 아직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들은 산 자에게는 절대 늙지 않는 당시의 나이 그 모습으로 기억되어 함께 살고 있다. 9.11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 후유증으로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앓는 사람들은 아침이 오면 아침을 맞고 집안일을 하거나 또는 직장에 나갔다가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TV를 보다가 잠자리에 드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테러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테러에 굴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9.11직후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고 이후 전쟁이 일어났고 보복 테러 위협이 계속 되면서 12년이 흘렀다. 9.11테러 이후 이슬람을 이해하기 위하여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는 이슬람 문화전시회를 했고 출판계에는 이슬람 세계와 문화에 대한 출판물이 쏟아졌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사회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공포증이 일종의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전쟁의 고통과 두려움을 피해 미국으로 살러온 죄 없는 무슬림이 극단적 이슬람원리주의자로 취급당해 무시와 편견을 당하기도 한다.

2010년 8월 3일, 뉴욕시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두 블럭 떨어진 파크 플레이스에 메가 모스크 건립을 승인했다. “희생자에 대한 모욕이다”며 유가족을 비롯 공화당원, 대다수 미국인들이 모스크 건립 반대를 외쳤지만 공사는 진행되어 총 1억4,000만 달러가 투입되는 모스크에 강당과 기도실, 극장 등이 들어설 예정이라 한다.
그때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은 ‘종교의 자유와 문화적 관용을 세계에 보여주어야 한다. 자유와 관용이야말로 독재와 테러리스트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이 시대의 정신이다’며 건립 찬성의지를 밝혔다.

뉴욕시에 60만 명의 무슬림, 100개 이상의 모스크가 있다는데 모른 척 하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다 민족으로 형성된 뉴욕은 다른 민족의 문화를 인정하고 포용해야 세계적 도시의 명성에도 걸맞다.

이번 9.11기념식에서 오바마는 이런 말도 했다. “12년 전과는 다른 위협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갖고 때론 무력이 필요할 지라도 무력만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세계를 건설할 수 없다는 지혜를 갖자”고 당부했다. 물론 감정상으로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고 ‘이에는 이, 피에는 피’로 받은 대로 고스란히 돌려주어야 속이 시원하겠지만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낳는다는 말을 먼저 기억하자.

퀸즈의 한인 밀집 지역 곳곳에서 모스크를 만난다. 예배시간에 그 지역에 주차하려면 이중삼중으로 주차된 무슬림의 차 때문에 주차장을 찾기 힘들다. 기독교인, 유대인, 무슬림 등이 모여 같이 손잡고 들어가 예배 보는 일은 성사되기 어렵지만 문화 축제마당은 열 수 있을 것이다. 각 종교의 문화 전시회나 강연회, 찬양 연주 등 문화 교류의 장을 만들어 함께 이야기하면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

맨하탄에 세워지는 모스크를 뉴욕시가 받아들인 것처럼 뉴요커들이 타종교 알기 운동을 펼쳐 낯선 이방인을 친절한 이웃으로 받아들이면 앞으로 기독교와 이슬람의 전쟁이나 문화간 충돌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자유와 관용’, 참 좋은 말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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