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 가지 살과 나잇살

2013-09-0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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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윤 태(시인)


나이가 들면 거북스럽게 생기는 세 가지 살이 있다. 뱃살, 허리 살, 주름살이다. 누구나 반갑게 여기지 않는 거북한 살이다. 거기에다 가장 두려운 살이 한 살, 두 살 먹어가는 나잇살이다. 젊어서는 나잇살이 두려운 줄 모른다. 50대에 들어서서 닥치는 정년퇴직이라던가, 소위 말하는 밀어내기의 명예퇴직을 눈앞에 두게 되면 나머지 긴 세월에 부양해야 할 가족 때문에 가장 두려워 지는 것이 나잇살이다.

잘 살지 못했던 예전에는 뱃살이 두껍게 낀 사람을 별로 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경제적으로 풍족한 사회가 되고 음식문화가 다양해지고 나서부터 뱃살은 끼기 시작했고, 뱃살이 두꺼워지니 더불어 허리 살까지 두툼하게 두꺼워지기 시작을 했다. 예전 같으면 부자가 될 징조라던가 덕살이라고도 한 뱃살, 한국인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배가 나와 잘 사는 나라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현대에 와서는 뱃살, 다시 말해서 복부 비만이 당뇨라던가 심장질환의 근원이라고 위험성을 골라 지적한다.


비만에 시달리는 한국인들이나 미국인들에 비해 거의가 다 배가 홀쭉한 이민자들, 그래서 가난한가? 편하기도 하고, 조급한 현대생활에 시간도 아낄 수 있는 즉석 식품이 남발하면서 부터 급격히 늘어나는 체중, 초등학교 학생들조차 과체중으로 게을러지면서 운동하기를 기피하고 뱃살은 늘어간다.신체의 쌓이는 지방이나 필요가 없는 살은 노력하면 조절이 가능하다. 조절이 불가능한 살은 주름살이다. 거울에 비치는 얼굴의 주름살을 보면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 “벌써!” 사람에게 세월이 놓고 가는 흔적은 주름살뿐이다. 주름살 앞에서 한숨으로 수여되는 반갑지 않은 훈장, 안면을 바꾸는 것이 세월이라 세월이 주름살로 변하여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세월의 속성을 모른다.

농사를 짓는 농부들 손등에 굵게 패인 주름살이라던가, 나이 들어가는 아내들 얼굴에 잔잔히 퍼지는 잔주름, 특히 말로서는 표현이 되지 않는 어머니들의 주름살들은 모두 삶의 무게와 인생살이의 피곤함을 늘어놓은 훈장들이다.산천에도 주름살은 있다. 산과 산 사이에 패인 계곡도 주름살이요, 굽이치며 흐르는 강과 개천도 물과 세월이가면서 파 놓는 주름살이다. 주름살에는 들리는 소리도 많고 보이는 풍경도 많다. 추억이다. 쓰러져 엎디어 간절하게 외우며 합장하던 어머니의 피 맺힌 염원도 들린다. 그런 염원 속에서 우리는 살아왔고 그 염원의 흔적이 모두 주름살이 되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바닷가 모래밭에 기어 올라온 파도의 염원이 얼마를 견디지 못하고 소멸하는 것처럼 시간을 밀고 올라온 인생의 염원도 주름살을 남기고 모두 소멸한다. 삶이란 다 그런 것이다.그래서 사람들은 육자배기 노래를 부른다. 육자배기 노래가 흥건한 자리를 방석으로 깔고 앉아 그동안에 경험한 인생의 슬픔과 기쁨을 기억하며 주름살을 들여다본다.한 해가 가면 새로운 새 해의 동네가 나타나 기뻐하던 그 새 해란 동네의 이름들, 모두 희망이었지만 새로운 것도 아닌데 새롭다고 느껴지던 그 여행도 결국은 주름살이 길을 내듯 마음속에 방향 없는 이정표의 주름살로 남는다. 사랑이 아무리 뜨거워도 사랑이란 이름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다 채울 수 없는 인생, 인생은 주름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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