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아있는 바다

2013-08-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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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은 전 세계에서 자선을 가장 많이 베푸는 민족이다. 돈에는 누구보다 집착하는 이들이 자선을 많이 하는 이유는 자신과 이웃, 나아가서는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다. 이스라엘에는 요단강근처에 두 개의 큰 호수가 있다. 하나는 ‘사해(死海)’이고, 또 하나는 ‘살아있는 바다’로 불리운다. 사해는 밖에서 물이 들어오지만 다른 데로는 나가지 않는다.

반면 살아있는 바다는 물이 들어오고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자선을 베풀지 않는 것은 마치 사해와 같아서 돈이 들어오기만 하고 나가지 않는 것과 같다. 자선을 하는 사람은 살아있는 바다와 같아 물이 들어오고 또 나가기도 한다. 돈을 버는 것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 보내기 위함이고, 궁극적으로는 타인과 나누는데 있음을 말해주는 삶의 진리이다.

미국의 부호들은 이런 철학을 일찍이 깨닫고 돈을 벌면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 자동차재벌 핸리 포드 등은 매년 거액의 돈을 사회에 환원했다. 이런 모습은 요즘의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나 투자가 워렌 버핏 같은 대부호들도 다를 바가 없다. 돈을 벌면 마땅히 사회를 위해 써야 한다는 철칙으로 기부행위를 기쁨으로 하고 있다.


한인들 중에는 빌딩을 몇 개 가진 사람이 하나 더 갖겠다고 안간힘을 쓰다 병에 걸려 돈 한 푼 못가지고 세상을 뜨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한인사회는 대체로 일단 들어가면 나오지 않는 돈의 흐름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 손을 꼭 쥐고 태어난다. 죽을 때는 반대로 손을 펴고 있다. 왜 그럴까? 나올 때는 모든 것을 붙잡으려고 하기 때문이고, 떠날 때는 모든 것을 뒤에 남는 인간에게 주고 미련 없이 떠나기 위함이다. 동양의 저 유명한 진시황제도 죽기 전에 모든 문무백관들을 불러 자기 손을 펴 보이며 “내가 갖고 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너희들도 나처럼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하는 고로 생전에 타인에게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고 유언을 남겼다.

얼마 전만 해도 불볕더위가 한여름을 달구더니 어느새 벌써 풍요의 계절, 가을이 성큼 눈앞에 다가왔다. 논에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과 나무에 주렁주렁 결실을 맺는 온갖 과실들을 보면 인간은 가을의 풍요함에 절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알곡이 우리에게 주는 무언의 가르침이다.

가을은 한 해의 결실을 의미한다. 인간에게는 생의 풍요를 상징한다. 하루하루 살다보니 어느새 한해 후반에 훌쩍 다가섰다. 이민 1세대는 정신없이 돈 벌고 자식 키우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인생의 종반부에 와 있다. 부지런히 뛰었지만 왠지 쓸쓸함과 허전함만 더해가는 계절이다. 의미있게 살지 못해 남은 정신적 공허감, 일명 ‘빈 둥지 신드럼’이다.

가을처럼 다가온 인생의 하프타임, 이 시기는 아직 위기가 아니다. 얼마든지 활기를 되찾고 남은 생애를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기회다. 이 가을엔 이제까지 신경 못쓴 남을 위한 나눔과 봉사에 관심을 기울여 삶이 보다 풍요로워져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은 재산을 늘리고 자녀교육에 성공을 가져왔다면 앞으로 남은 기간은 진정한 생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시간으로 채워야 한다. 풍요의 삶을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할 시기는 내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다.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베스트셀러 ‘하프타임(Half Time)’으로 화제를 모은 미국인 밥 버포드는 “죽도록 돈만 벌다 가는 답답한 생활방식은 이제 그만 내던져야 하며 인생후반부를 더욱 의미있게 많이 베푸는 삶으로 채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버포드는 성공한 기업가로 인생후반에 타인을 위한 봉사와 베품으로 의미를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는 말한다. “나는 좋은 땅에 떨어져 100배로 불어난 씨앗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것은 내 열정과 내가 가장 헌신하는 일을 표현하는 방식이며 마음속에 그려놓은 내 유산이다. 나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풍성한 결실의 상징이 되고 싶다.”

여주영 주필juyoung@koreatimes.com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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