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들꽃 같은 사랑

2013-08-2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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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여기에 소개하는 이야기들은 과연 무슨 뜻을 지녔을까.
걷어찬 쓰레기통-5번가 27스트릿 부근에서 웬 남자가 별안간 보도의 높이 1미터가 넘는 철제 쓰레기통을 보기 좋게 걷어찼다. 쓰레기통은 굴러서 차도 한가운데 멈췄다. 저걸 어떻게? 곧 교통신호가 바뀌면 차들이 파도처럼 밀려 내려올 텐데……. 그런데 한 남자가 차도로 나가더니 쓰레기통을 들고 와서 제자리에 놓는다.

놀라운 것은 지금까지의 광경에 무관심한 듯 보도의 사람물결은 종전대로 움직인다. 쓰레기통을 걷어찬 사람과 그것을 제자리에 옮긴 사람은 전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보도의 사람들은 흩어짐이 없이 같은 속도로 같은 이야기를 이어가듯 움직이고 있다.


길바닥을 닦는 여인-여인이 한손에 비닐봉지를, 한손에 휴지를 들고 길바닥을 닦고 있다. 옆에는 강아지 한 마리가 서성거린다. 애완견의 배설물 처리는 개주인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오늘 것은 묽어서 수거하기가 곤란한 모양이다. 모르는 척하고 대강 처리할 수도 있겠는데, 그 여인은 깨끗이 닦으려고 노력한다.

장미로 장식된 흰 자전거-길가 철제 기둥에, 작은 사제 광고판이 붙어 있다.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기를-’ 그 밑에는 온 몸을 흰색페인트로 단장한 자전거 한 대가 고정되었다. 그 흰자전거는 공예품인 빨간 장미로 온몸을 에워싸고 있다. 맨 처음 그 옆을 지날 때는 섬뜩했다. 그러나 요즈음은 고인 친구들의 우정을 느끼며 정다운 마음으로 지나게 된다.

대머리가 된 아버지 부시-미국 전 대통령 아버지 부시의 머리털이 없어졌다. 그 옆에는 역시 머리털이 없는 어린 남자애가 같이 앉아있다. 사진 설명에 따르면, 부시 전 대통령 경호원의 아픈 아들의 친구가 되려고 머리를 깎았다는 것이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머리를 깎아 아픈 어린이의 친구가 되었다니 마음이 뜨거워진다.

손짓과 눈짓의 점심 맛-셔츠에 타이를 맨 오피스 사람들이 길거리 식당차 앞에 긴 줄을 이루고 있다. 이것도 미국다운 풍경이다. 그날따라 은행에도 못 가고, 양어깨에 전시 작품이든 큰 주머니를 메고, 양손에 샤핑백을 들고 있던 필자는 그 줄에 섰다. 줄을 따라 돈을 받는 사람에게 얼마냐고 묻자 7불이란다. 지갑을 열고 보니 3불과 잔돈 1불이 있다. 4불짜리도 있느냐고 묻자, 그렇게 만들 수도 있단다.

앞에 섰던 인도인이 점심을 받아들고 떠날 때 나를 가리키고, 돈 받는 사람은 그를 향해 눈짓을 하는 것을 보았다. “저 분이 왜 나를 가리켰지요?” 그가 떠나자 내가 물었다. “당신을 도와주라고 거스름돈을 받지 않고 떠났어요” 깜짝 놀란 내가 물었다. “얼만데요?” “3불이니까 댁의 점심값 7불이 되어요.” 필자는 말을 잃었다.
작품전시장에는 동료교사가 기다리고 있어 둘이 특별한 점심을 맛있게 들었다. 모르는 분의 정성 담긴 점심이니까.

앞에 예거한 에피소드는 대도회지에 핀 꽃들. 정열적인 해바라기 사랑, 고귀한 빨간 장미 사랑, 끈질긴 백일홍 사랑이 아닌, 들에 핀 자그마한 들꽃 사랑 이야기다. 자그마한 보일락 말락 한 사랑이 주위 사람들의 마음에 조용히 와 닿는다.

그들은 왜 그런 일을 할까. 아마 생활의 습관이 된 움직임일지 모른다. 그들에게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연장이라고 느낄 것이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타인을 돕고 있다. 그들의 사랑은 잔잔한 물결이 퍼져나가 듯 세계로 퍼져나가 인류애가 될 것이니, 눈여겨 볼만하다. 또한 이렇게 내 바로 옆에 있는 작지만 가치가 큰 일들은 누구나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일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도 실천하지 않을 따름이다.

어떤 일을 몰라서 안 하거나, 알고도 안 하거나 결과의 차이가 없다. 도대체 “들꽃 같은 사랑아, 너는 어떻게 컸니?” “처음에 나 자신을 사랑했어” “그리고는?” “옆에 사람을, 또 그 옆 사람을, 멀리 있는 사람을,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사람을, 사람이 아닌 것들을…….” “그리고는?” “결국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들꽃 같은 사랑이 인류 사랑으로 커간다는 이야기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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