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피로 물든 고대문화 발상지

2013-08-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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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을 중심으로 4대 문화 발상지인 이집트는 오랜 문화와 전통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역사적 요람지였다. 이집트의 상징이라 불리는 나일강은 여름이면 홍수로 범람, 운반된 토양이 농토를 덮으면서 해마다 농경지가 풍작을 이루어 온 국민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이집트 국민들은 나일강을 마치 하나님 섬기듯이 한다고 한다.

흔히 일컫는 ‘나일강의 기적’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집트는 역사적으로도 상징성이 매우 짙은 나라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히브리민족의 조상 대부분이 이집트(당시 애굽)를 거쳐 갔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너는 정녕히 알라, 네가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들을 괴롭게 하리니...” 라고 하였다.

예언대로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은 기근으로 애굽 땅을 찾게 된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고난 끝에 애굽의 총리로서 나라의 치리자가 되었고, 요셉으로 인해 야곱의 가족 70명은 애굽의 고센 땅에 정착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기틀을 이룩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도 탄생과 더불어 헤롯왕의 핍박을 피해 애굽으로 이주해 객이 되었으며, 헤롯왕이 죽은 뒤에야 겨우 이스라엘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집트는 결과적으로 당대 최고의 피난처가 된 셈이다. 하나님이 새 왕에 의해 핍박받던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광야생활 끝에 비옥한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 모세로 하여금 탈출시킨 곳도 바로 애굽 땅, 지금의 이집트였다.


이처럼 한때 유대민족의 안식처였던 애굽은 그 당시 역사를 풍요롭게 해준 시대적 발상지였다. 온갖 풍파 속에서도 도도히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저 유명한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대표적인 문화건축물이자 세계적인 문화유적이다. 둘 다 인간역사의 무한을 뛰어넘는 위대한 예술품으로서 현대과학조차도 조명이 불가능한 그 시대 최고의 위엄을 지금도 변함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런 웅대한 역사를 지닌 이집트가 불행히도 최근 피로 물들고 있다.

이집트군부가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세력을 강경진압하면서 무차별 유혈살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수 백 명의 사상자와 수 천 명의 부상자가 속출, 이집트 반정부시위대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 사태를 국제사회가 일제히 비난했으며, 안전보장이사회도 긴급회의를 통해 이집트에 ‘폭력 종식’을 권고하고 나섰다. 유럽에서는 이집트에 대한 지원 중단 및 무기수출을 전면금지하는 조치를 취하는 등 발 빠른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집트군부의 대학살 분위기는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무르시 전 대통령 정치적 기반의 비폭력투쟁 무슬림 형제단의 폭력투쟁의 기미가 감돌면서 앞으로의 사태가 어디까지 튈지 심히 염려스럽다.

그동안 이집트정부에 막대한 원조를 해온 미국은 이번 시위조직에 동조하는 반미 이슬람 세력의 확산을 우려해 전전긍긍하면서 앞으로의 행보를 저울질 하고 있다. 한때 아랍의 봄으로 희망을 보이다 또 다시 경제적 위기로 인해 촉발된 이집트의 이번 유혈사태는 앞으로 무슬림형제단의 가세분위기가 어떤 형태로 돌출 될 지 관건이 되고 있다. 저 웅장한 역사의 요람이 이처럼 바람 앞에 흔들리고 있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오늘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인간은 제한된 최소한의 기간 외에는 모든 것이 더 나아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한때 아무리 영화로웠다 하더라도 어느 기간 이상은 존속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그가 이미 모든 면에서 알고 한 말이 아닐까. 무고한 인명이 무차별 살상되는 참혹한 이집트현실을 보면서 하루속히 이 나라에 평화가 깃들어 예전의 그 풍요하고 안정된 모습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건 비단 나뿐이 아닐 것이다.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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