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강력한 메시지 ‘말 없음’

2013-08-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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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사람의 말은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 어는 한마디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줄 수 있고, 생각 없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 때문에 큰 상처를 줄 수 있고, 진심어린 한마디의 말이 오랜 원한 관계를 씻을 수 있다. 그런데 말보다 더한 위력을 보이는 것이 ‘말 없음’이다. 바로 이것을 증명하는 것이 ‘평화의 소녀상’이다. 현명한 방법으로 항거하는 그녀는 아름답다.

그녀의 표정은 온화하고, 입을 꼭 다문 모습은 조용할 뿐이다. 하지만 그녀가 전하는 메시지는 일본인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이런 그녀가 마주보고 앉아있는 곳은 바로 서울의 일본대사관이다. 참기 어렵던 일본인들이 마침내 동상의 자리를 옮겨달라고까지 하였을까. 추위가 한창일 때는 누군가 따뜻한 모자와 겉옷에 목도리로 둘러쌀 만큼 시민의 사랑을 받는 그녀는 말없이 말하고 있다. 지나온 역사를. 참기 어렵던 역사를 잊지 말자고 조용히 항변하고 있다.


“아무개가 오늘 결혼 했대”
졸업 축하모임에 모였던 친구들은 깜짝 놀랐다. 어제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었으니, 신부의 나이 겨우 열여덟인데……. 웬일일까? 그 이유는 ‘정신대’에 끌려가는 것을 염려한 부모의 결정이었다고 한다. 또 다른 친구는 열일곱에 결혼했다. 똑같은 이유로. 이런 경향은, 1940년대 초반의 필자 친구들 이야기다. 이게 바로 현재 나이 90에 가까운 한국 사람들의 잊고 싶은 체험담이다.

‘정신대’는 무엇인가? 보통사람들은 그들이 전쟁터에서 봉사하는 일거리라고 선의의 해석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일선에서 싸우는 일본군의 위안부였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 시절 적령기의 처녀 부모들은 위기감에 사로잡혀, 어린 딸을 결혼시켰던 것이다.

도둑이나 살인한 사람에게도 변명이 따른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일본정부의 해명은 아주 딴판이다. ‘일선에서 전투하는 군대의 사기를 북돋기 위한 방법으로 위안부를 두는 것은 각국 다름이 없다. 강제로 위안부를 데려갔다지만, 그들은 자진 참가하였기 때문에 전연 문제될 것이 없다’고 시치미를 뗀다. 정말 그럴까.

과거의 위안부였던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한다. “가난한 가정에 태어난 나는 공부하고 싶은 집념을 가지고 있었어요. 어느 날 나를 만난 사람은 “공부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는 길이 있다”고 꾀었어요. 나는 그 말을 진실로 믿고 위안부가 되었지요. 그런 위안부의 생활은 지옥이었고, 동물이었고, 삶의 마지막이었고, 짓밟힐 대로 짓밟혔어요.”라고.

엄청난 역사적인 사실을 말살할 수 있을까. 과거 위안부였던 살아있는 증인들이 아직도 60명 가까이 생존한다. 그 시절을 겪은 인구가 한국인의 20%가 된다. 그리고 각종 증거품이 있는데 궤변이 통할까. 일본이 딱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그들이 어리석다. 일본에도 양심적인 사람들이 있고, 한때 현실을 수긍하는 정부도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 정권이 바뀌면서 양국 관계가 벌어졌다. 그들은 독일에서 교훈을 얻었어야 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도 인류에게 무서운 죄를 졌다. 그러나 그들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죄를 인정하고, 사죄하였으며 변상하려고 노력하였다. 일본은 다르다. 한국이나 동남아시아에 사죄는커녕, 그대로 큰 소리 치고 있다. 그들의 언동이 시대의 흐름에 역류하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와 세계의 우수 국가들이며 옆집에 살고 있다. 이것이 지혜롭게 어려움을 타개하고, 미래를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일본은 과거사를 사과하고, 한국은 용서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메시지를 주는 것이 ‘평화의 소녀상’이다. 그는 말없이 말한다. 과거사에 붙들리는 시간을 벗어나라고. 한국과 일본이 손잡고 미래로 나가라고. 그녀는 입을 꼭 다물고 웅변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글렌데일에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있었음은 각국의 관심을 끄는 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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