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목숨을 담보로 한 퍼포먼스!

2013-08-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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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사람의 목숨이 이렇게 허무하게 갈 수도 있나.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우주보다 더 귀하고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자신의 생명을 낙엽 떨치듯 떨쳐버린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 우울하게 한다. 왜 이다지도 생명 알기를 우습게 아는 세상이 되었을까. 세상 탓인가, 아님 인간 스스로의 어리석음 탓인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어렵다.

지난달 26일 방송인이자 시민사회운동가인 성재기(46) 남성연대(男性連帶·Man of Korea) 대표가 마포대교에서 한강으로 투신했다. 그의 시신은 29일 서강대교 근처에서 발견됐다. 그가 한강에 투신할 당시의 상황이 방영까지 되어 더욱 경악을 금치 못한다. 다리 바깥 난간에서 그의 손이 난간에서 떨어질 때 카메라맨은 그 걸 찍고 있었다.


투신한 이유가 어리석다. 그는 25일 남성연대 홈페이지에 “남성연대 부채 해결을 위해 1명이 1만원씩 1억원만 빌려 달라. 모금이 여의치 않으면 한강에서 뛰어 내리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날 약속이행을 위해 뛰어내렸다. 그는 “반드시 살아 돌아오겠다”고 해 일종의 ‘퍼포먼스’로 그의 동료들은 그를 말리지 않았단다. 안 말릴 게 따로 있지!

대한민국 형법 252조 2항에 보면 “사람을 교사 또는 방조하여 자살하게 하는 죄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지금 한국에선 현장에서 투신을 보고만 있었던 카메라맨과 동료들에 대해 왈가왈부 논란이 많다. 검찰에선 자살방조죄에 해당하지 않음을 시사했으나 일부 논객들은 도덕적 자살방조죄에 해당된다고 말한다.

약속이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왜 약속을 네티즌들에게 했을까. 혹여나 “한강에 뛰어 내리겠다”는 약속을 했다 해도 정말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뛰어내리는 사람이 어디 있나. 어리석어도 보통 어리석은 게 아니다. 남성연대의 사업과 운영이 부채로 어려움이 있다면 다른 방도를 택하여 개선할 수도 있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책도 있질 않나.

어리석게도 약속을 이행하려다 물에 잠겨 죽은 미생(尾生)이란 사람이 <장자> 잡편(雜編)의 도척(盜?)편에 나온다. 미생은 어느 여자와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온 종일 다리 밑에서 기다려도 여자는 오지 않고 물만 불어났다. 그래도 그는 약속을 지키려 거길 떠나지 않고 기다리가 다리기둥을 껴안은 채 물에 빠져 죽고 만다.
장자는 이를 가리켜 “죽음을 가벼이 여겼고 본성으로 돌아가 수명(壽命)을 보양하려 하지 아니한 어리석은 사람”이라 평한다. 여기서 죽음을 가벼이 여겼다는 것은 곧 죽음을 우습게보았다는 것과 상통한다. 성재기씨가 한강에 뛰어내릴 당시 그 마음에도 죽음을 가벼이 여긴 게 나타난다. 어쩌면 약속이행을 하려다 죽은 미생과 이렇게 흡사할까.

투신한다고 다 죽는 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투신자살에 이용되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에서 1979년 투신한 어떤 청년은 물에 떨어진 뒤 다시 헤엄쳐 나와 자동차를 몰고 집으로 유유히 돌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금문교에서 투신(1937-2005)한 1,218명의 투신자 중 살아남은 자는 불과 26명밖에 안 된다. 생존율 2.1%로 저조하다.

2012년 8월19일 잉글랜드 출신의 유명감독 토니 스캇(Tony Scott)이 투신자살했다. 캘리포니아 롱비치의 토마스 다리였다. 탐 크루주를 대배우로 만든 ‘탑건’(1986)을 연출한 감독이다. 영화는 당시 대 히트를 쳤다. 스캇의 투신이유로는 뇌종양판단을 받고 비관하여 투신한 것으로 언론은 밝힌바 있다. 그는 68세였다. 그래도 살았어야 했다.

투신 중 살아난 사람들의 공통점은 뛰어내릴 때 다리가 먼저 물과 충돌하여 빠지는 경우라 한다. 머리가 먼저 물에 닿을 경우엔 물에 충돌할 때의 격심한 압력과 마찰로 정신을 잃어버려 물속에서 나오지 못하기 때문일 게다. 살아난 사람들의 경우 뛰어내리면서 먼저 생각 드는 것은 후회였다고 한다. 성재기씨도 뛰어내리면서 후회했을까?

목숨을 담보로 한 퍼포먼스! 그를 지켜보던 카메라맨과 동료들. 어리석기 짝이 없다. 우주 최고 가치의 유일회(唯一回)의 생을 그렇게 헐값에 버려버리다니. 김종학피디(PD)가 생을 달리하여 사람들에게 슬픔을 안겨주고 있는데, 남성연대 성재기대표의 죽음이 또 우리를 우울하고 슬프게 만든다. 수명(壽命), 보양해야 할 최고의 가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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