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수께끼 소나기

2013-07-2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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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주거지로 다행한 일 중의 하나는 사계절 지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춥고, 더운 것을 곧잘 불평한다. 그때마다 ‘추울 땐 춥고, 더울 땐 더운 것’이 자연스럽다는 말이 들린다. 하여튼 불평보다는 그것을 재미있게 생활에 활용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래서 여름의 반가운 손님 ‘소나기’를 벗으로 삼았더니 이 소나기는 우리에게 열 가지 수수께끼를 들고 온 것이다.

첫째, 시원한 것은 무엇인가? 한여름의 냉면 맛, 울고 보채던 아이가 잠들다, 앓던 이가 빠졌다, 무더운 날의 한줄기 소나기, 빚을 다 갚은 날…….


둘째, 무서운 것은 무엇인가? 불과 물, 사람의 마음, 지혜의 크기, 천둥 번개, 만능 재주를 가진 로봇, 보이지 않는 광선, 정말 같은 거짓말, 달콤한 유혹…….

셋째, 자유란 무엇인가? 제멋대로 못 하는 것, 부자유란 말이 있음을 알리는 것, 자유의 크기는 각자가 만드는 것, 제멋대로와 구별되는 말…….

넷째, 끝없이 이어지는 것은 무엇인가? 시간으로 흐르는 역사, 삶의 이야기, 아라비안나이트, 사랑의 역사, 인류의 다툼, 세상에 태어나고 떠나는 현상…….

다섯째, 무엇을 물리쳐야 하는가? 일확천금의 횡재, 벼락감투, 달콤한 유혹, 노력보다 많은 보수, 사랑보다 물질을 사랑하는 마음, 내 자신이 우수하다는 우월감…….

여섯째, 무엇이 귀하고, 값진 일인가? 자녀를 올바로 키우는 일, 자신의 적성 알기, 꾸준한 삶의 노력, 작은 일을 소중히 다루기, 값진 하루 이어가기…….

일곱째, 제일 어려운 일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을 제어하는 일, 여럿이 어울려 산다는 일, 누구에게나 삶을 즐길 권리가 있다는 사실, 삶에 제한이 있다…….

여덟째, 아주 재미있는 있은 무엇인가? 뉴욕에서 서울까지 두 시간에 간다는 미래학설, 화성에서 거주할 편도 티켓 희망자가 많다는 것, 인생에는 왕복 티켓이 없다는 것…….


아홉째, 무엇이 소나기다운가? 설날의 결심, 사랑한다는 고백, 담배를 끊겠다는 각오, 우산을 접고 소나기를 맞다, 저금하는 습관, 좋은 어휘를 사용하겠다는 마음…….

열째, 요즈음 인상 깊게 느낀 일들은 무엇인가? 영국에서 새로 태어난 로열 베이비를 엄마와 아빠가 키우겠다고 결정한 일, 제 몸 가누기도 힘든 사람이 더 힘든 사람을 돕고 있다,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삶을 붙드는 말기 환자, 사랑이 국경을 넘나드는 상황, 불구의 가족을 돕는 가족애…….

‘소나기’라고 하면 연상되는 황순원의 단편 소설 ‘소나기’가 떠오른다. 내용은 전원적이며 향토적인 배경 위에 소년 소녀의 애잔한 순정을 그린 것이다. 이는 영화로도 제작된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이곳 학생들이 읽었을 때는 작품의 아름다움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으나, 그래도 무엇인가 느낀 것이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또한 ‘취우’(소나기) 작가 염상섭의 장편소설이 있다. 이는 6.25동란 당시의 현실적 상황을 소재로 하여, 도덕이전의 인간애의 중요성을 그린 작품이다. 희미한 기억에 따르면 신협에서 공연하는 연극을 본 듯하다. 이처럼 ‘소나기’는 장마와 달리 사람들의 관심사가 된다. 이는 소나기가 갑자기 세차게 내리다가 곧 그치는 비이기 때문일 것으로 안다.

따라서 때로는 반갑고, 곧 그칠 것이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조차 즐길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어느 때는 조금 먹다가, 어느 때는 놀랄 만큼 많이 먹는 밥을 ‘소나기 밥’이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생긴 말에 ‘소나기 술’도 있다. 하여튼 우리들은 ‘소나기’를 좋은 친구, 재미있는 친구로 대하고 있다. 다른 한쪽에 있는 ‘장마’가 지루한 친구라면, ‘소나기’는 반갑고, 시원한 친구가 된다.

수수께끼 소나기는 심각하게 다루어야 하는 인생사에서 벗어나 소나기 같은 답을 던지는 수수께끼이다. 수수께끼의 답을 묻는 독자에게 그 정답은 각자의 몫이라는 소나기의 말이 또한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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