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대교체, 그 이면의 쓸쓸함

2013-07-26 (금)
크게 작게
집을 나섰다. 플러싱으로 가기 위해였었다. 두 개의 행사가 우연히 겹쳐있었다. 하지만 둘 다 지난 20년간 관여했던 단체였던지라 어쩔 수 없이 여기 잠시, 저기 잠시 머물다 실례하리라 작정했다. 브루클린에서 플러싱으로 가는 하이웨이는 차로 꽉 차 있었다. 러시아워였다. 브루클린을 빙돌아 또 다른 하이웨이로 올랐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조바심이 나고 안달이 났지만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행사 시각에 너무 늦게 도착하지 말기만 바라고 있었다.

우선 첫 행사 장소에 겨우 도착했다. 골프협회의 시상 장소다. 연회장 입구부터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협회 회장, 사무총장과 인사한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가 골프대회 후인지라 넥타이 매고 정장한 사람은 나밖에 없는 듯 하였다. 민망했다. 저 앞에 앉아있던 어떤 분과 악수 한 후 그 장소를 부리나케 뛰쳐나왔다.

모든 것이 생소했다. 정장한 내가 그렇고 거기 와 있던 분들은 대개가 일면식도 없는 전혀 모르는 본 적도 없는 그런 분들이었다. 세월이 그만큼 흘렀으니 협회는 장구한 세월을 건강하게 해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해 가지만 구성요원이나 성원하는 한인골프인들의 모습은 변했다는 것을 실감나게 느꼈다. 그만큼 내가 늙어버린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쫓겨나듯 부랴부랴 나와 버렸는지도 모른다.

두 번째 장소로 갔다. 차로 20분정도 거리였다. 벌써 식순이 시작되었는지 모두가 연회장을 꽉 메우고 앉아있었다. 청소년재단 20주년 기념행사였다. 아무데나 조금 앉아있다 나오려는데 재단 현직 임원이 앞석 어디엔가로 안내했다. 전직회장단 자리였다. 위로 선배회장님, 아래로 후배회장들과 목례로 인사한 후 꽉 메운 연회장 좌석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생소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젊다.


말 그대로 내 나이에 비하면 아들, 딸 뻘 되는 청소년들이다. 유창한 영어와 우리말. 이중언어로 식이 진행되었다. 예전과는 다른 한인사회 행사 풍경이다. 옛날에는 영어 몇 마디 하면 뭐라고 쏼라쏼라 한다고 빈정대던 한인언론도 있었다. 이제는 당연시되는 세태가 되었다. 그만큼 미주한인 단체연혁이 쌓인 것이다.

겸연쩍게도 전직회장단을 소개하고 있었다. 엉거주춤 반쯤 서서 있다가 바로 앉아버렸다. 그리고 저녁을 잘 먹은 후 다음날 일 때문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핑계를 댄 후 플러싱을 떠나 브루클린으로 향했다. “선배님의 시대는 지났다”고 정색을 하고 대들듯이 말하던 어느 후배가 생각난다. 마치 어느 한국 대선 후보가 “늙으면 집에서 애나 보라”는 항의를 담고 있었다. 세상 젊은이들의 노인 경외라는 말과 동떨어진 언행의 세상이 된 지 꽤나 된다.

386세대라던가? 그들이 지나간 자국, 정말 세상에 커다란 대못을 박아놓았다. “늙으면 죽어야지”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처럼 죽은 듯이 살아야 하나? 세상 참 노인들을 허망하게 만들고 있다.

방준재(내과전문의)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