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종문제 극복이 미국의 미래

2013-07-2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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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아동문학가 / 목사)

17세의 비무장 흑인 소년 트레이언 마틴을 사살한 조지 짐머맨(29세)이 무죄 판결이 됨으로써 미국 전역의 흑인들이 들끓고 있다. 지난 주일 뉴저지, 뉴욕을 위시한 전국의 많은 흑인교회 강단은 플로리다 법정의 짐머맨 무죄 판결을 규탄하는 설교가 불을 뿜었다고 레코드 지(The Record)는 여러 교회의 실례를 들어 소개하였다. 이번 사건은 미국의 백인 사회가 아직도 흑인을 인종차별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가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미래는 인종문제 극복에 달렸다. 많은 인종과 문화가 모여들어 하나의 나라를 이룬 미국이 이 다양성(多樣性)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미 미국이 아니다. 미국의 아름다움과 가치는 다양한 색채의 조화에서 온다. 다양한 인종 복합문화는 단일 민족, 단조로운 문화보다 더 깊은 아름다움을 창출한다.


하모니(화음)를 피풀스 사전은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화음이란 서로 다른 소리들을 하나로 묶는 작업이다. 그래서 더 자연스럽고 발전된 새 질서를 창조하는 음악 형성의 3대 요소 중 하나이다.” 내가 전체의 화음을 조정하는 하나의 작은 소리가 되는 것이 민주 시민의 길이며 소위 평화를 만드는 자가 되는 것이다.

미국을 ‘샐러드 볼’로 표현하는 것도 다양 속의 조화를 가리킨다.
링컨의 연설(1858년)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 그와 같이 나는 주인이 되고 싶지도 않다. 그것이 민주주의 이념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남의 종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남을 부리고 명령하는 주인 격에 자기를 올려놓으려고 한다.
나는 ‘엘리트’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학벌이나 재력이 좀 있으면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잘난 척하고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하는데 그들이야 말로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자들인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 권위주의는 없어야 한다. 정치의 독재자는 물론이요 가정에서도 아버지나 남편이 권위주의로 가정을 다스려서는 안 되며, 회사나 교회에서도 사장이나 목사가 권위주의로 사원이나 교인을 다스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예수까지도 제자의 발을 씻어 주는 낮은 자세를 휘하지 않으셨는가!

다수파가 소수파의 의견을 지긋이 들으며 자기의 의견을 밀고 나가는 인내의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이다. 수가 많으면 못할 것이 없다는 얕은 생각 때문에 무리가 생기고 사람을 무시하고 인간을 기계로 만드는 모순이 생긴다. 가정에서도 힘이 없는 노인이나 재력이 없는 아이들의 의견도 존중되고, 어떤 기관이나 교회에서도 여성이나 소수의 의견을 충분히 듣는 훈련이 곧 민주주의 훈련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결국 조화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음식의 조화가 깨져도, 감정의 조화가 깨져도 사람은 병들게 되어있다. 건강이란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것은 평화를 말하고 조화를 뜻한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피차가 녹아 없어져서 융합됨을 말하지 않는다. 각자의 특색을 유지하면서 피차의 부족을 보충해 주어 더 높은 화음을 만드는 것이 사랑이다.

인종, 문화, 종교, 언어, 전통이 달라도 대화합을 이룩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 미국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마음, 차이점을 거부하지 않고 활용하는 아량, 다른 색깔들도 조화에 따라 아름다운 모자이크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이해가 화합을 이룩할 수 있는 기본 정신이다.

예수는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저희가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통합된 제자상(弟子相)이 그의 천국사상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미래는 ‘다양(多樣) 속의 통합’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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