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약육강식’이 아닌 ‘상생’의 자본주의로

2013-07-1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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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경제팀 기자)

얼마전 뉴욕뷰티서플라이협회 임시총회를 취재차 방문했을 때 가장 큰 화두는 ‘과당경쟁’이었다. 한 지역에 여러 업체들이 몰리다보니 서로 가격을 낮추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업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뷰티서플라이업소들은 다른 업종과 달리 흑인을 주고객으로 하기 때문에 흑인 거주 밀집지역에 몰려있는 것이 특징이다.

문제가 된 지역은 퀸즈 자마이카였는데 이 지역에는 몇 블럭을 사이에 두고 수십 개의 한인 업소들이 몰려있어 이미 포화상태에 있었던 것. 그러다 1년전 일반 업소의 4~5배 규모의 한인이 운영하는 대형 뷰티서플라이업소가 들어서면서 주변 가게들은 어떻게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격을 낮췄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한 곳이 가격을 낮추게 되면 인근 업소들에서도 덩달아 가격을 낮추게 되고 결국 많은 업소들이 손해를 입으면서 물건을 파는 부작용을 낳게 됐다.


사전에서 과당경쟁을 검색하면 ‘기업 간의 생산·판매경쟁이 도를 지나쳐서 행해지는 상태’라고 나온다. 어디까지가 적정한 것이며 어디서부터가 과당인가 하는 판단은 매우 어려운 것이어서 과당졍쟁을 정확히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 철저히 자본주의의 원리에만 기초한다면 시장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다. 어느 법에도 ‘동종 업소간 5피트 내 입주 금지’와 같은 제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바로 옆집, 길 건너편에도 같은 물건을 파는 가게가 들어설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는 ‘상(商)도덕’이라는 윤리에 근거해 ‘서로 가까운 곳에 업소를 열지 말자’라고 약속하는 것 뿐이지 어떠한 법적 구속력이나 강제력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번에 발생한 한인 뷰티서플라이업소 과당경쟁 사태는 상호간 합의하에 원만하게 끝이 났지만 또 언제 어느 업소가 이 지역에 들어올지 모르는 일이라 늘 업주들이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이 사건의 중간에서 중재자 역할을 했던 뷰티서플라이협회 관계자는 “뷰티서플라이와 같이 한인들이 주로 운영하는 업종의 경우에는 같은 한인 이민자로서 서로의 상권을 보호해주기 과당경쟁을 자제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사실상 문을 열겠다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고 전했다. 그나마도 한인이 아닌 타민족이 업주인 경우에는 대화조차 시도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시장 경쟁에서 큰 자본을 가진 대기업이 경쟁력을 가지게 되고 경쟁력이 부족한 경제주체는 살아남기 위해 원가 이하로의 가격 할인 등 ‘불공정 경쟁’을 수단으로 활용하게 된다. 그러나 눈앞의 이익을 위해 낮은 가격으로 겨루다가는 다 함께 쓰러지는 현상을 낳게 된다.

몸집이 큰 기업들이 들어오는 것을 100% 다 막아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한인들이 함께 일궈온 업종에서만큼은 ‘상도덕’의 윤리가 작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때 협회의 틀 안에서 지속적으로 대화를 시도하고 건강한 경쟁 속에 ‘약육강식의 자본주의’가 아닌 서로 잘 살 수 있는 ‘상생의 자본주의’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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