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 언론의 인종비하 보도

2013-07-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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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미국의 언론과 여론은 이번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 직후 승무원들과 이들의 영웅적인 직업정신을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미국과 한국, 그리고 중국, 각 나라의 국익이 걸려 있음인지 최근 언론의 보도에서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짙은 방송을 내보내 한국인들이 발끈하고 있다.

중립을 지켜야 할 연방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가 인턴 직원의 실수로 지역 방송사에 사고비행기의 조종사들의 이름을 왜곡 전달했다는 리스트를 방송하여 한국이 조종사들을 놀림감으로 만든 데 대한 분노의 표출이다.

방송에서 중국인의 이름을 조롱하듯 바꿔 사고 비행기의 한국인 조종사 3명의 이름을 놀리면서 사고 과정을 희화화했다는 것이다. 내용 중 첫 번째 조종사의 이름을 ‘Sum Ting Wong’으로 띄우고 무언가 잘못됐다는 의미의 ‘something wrong’을 들어 우습게 비꼬았다. 두 번째 조종사의 이름도 ‘Wi Tu Lo’라고 하면서 너무 낮게 비행하고 있다는 의미의 ‘we are too low’라고 했고, 마지막 조종사는 ‘Ho Lee Fuk’ 이라고 했는데 이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종의 욕설이다. 이러한 조롱을 주류언론에서 대놓고 하는 것은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짙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에 한인사회내에도 NTSB측에 인종차별적인 보도를 지탄한다는 성명서 발표 등을 하며 방송행태를 규탄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
사고책임에 대한 유무는 앞으로 종합적인 상황분석이 있을 것이므로 우리들이 직접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 문제는 미국언론이 발표하는 인종차별적인 요소에 관한 사실여부이다. 우리가 미국에 사는 한, 우리와 직결된 이슈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영어발음이 잘 안 돼 버벅거리거나 시스템을 잘 몰라 엉뚱한 말이나 행동을 보이는 일이 너무나 다반사다. 이를 보는 미국인들은 얼마나 우리가 한심하고 우습게 보이겠는가. 언제 어디서나 조롱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지금부터 약 20년 전 뉴욕한인 1만 여명이 맨하탄 뉴욕시청 앞 광장에서 ‘인종화합을 위한 평화시위’를 적극 벌였던 일이 있다. 한인 청과상에서의 사소한 흑인 고객과의 시비가 보이지 않는 주류언론의 왜곡 편파 보도, 당시 시장의 무관심한 처사로 인해 한인청과상들은 한·흑 대결양상으로 변질된 흑인시위사태의 큰 피해자가 되었다. 그러나 한인들은 생존권 보호차원에서 이에 적극 대응, 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받아냄으로써 흑인시위의 종식으로 더 이상 사태가 비화되지는 않았다.
당시 터득한 학습효과를 확실하게 본 덕인지 이후 한인들의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대응은 전보다 훨씬 능동적이 되었다.

얼마 전 뉴저지의 한 한인여성이 약국체인 CVS에서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놀림을 당하자 뉴저지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일이 있다. 사진현상을 위해 필름을 맡겼는데 CVS직원이 누가 봐도 동양인을 비하하는 ‘칭 총 리(ching chong lee)’라고 사진봉투에 적어 심한 모욕을 느껴 제소한 것이다.

미국 프로야구계에서 차별적인 발언을 해서 퇴출된 선수가 있다. 1999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마무리 투수 존 로커는 메츠의 홈구장인 셰이스타디움으로 가는 7번 트레인은 더러운 아시아계와 히스패닉계들로 가득하다는 발언을 해서 야구계에서 퇴출되는 신세가 되었다. 가학하는 입장의 경우, 놀리는 것이 재미있겠지만 미국문화에 생소하고 영어로 유창하게 상대에 대항하기 힘든 소수민족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아프고 괴로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럴 때마다 어떤 자세로 대응해야 하는가. 미국의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백인의 차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스스로가 백인보다 못하다는 열등감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당한 차별적 행위나 말에 주눅들지 말고 잘 잘못을 가려 올바른 권익을 찾는 일에 보다 당당해져야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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