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35년 전의 그 소년

2013-07-1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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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1960년대, 뉴욕의 동포들은 서너 사람이 모이면 자녀교육에 대한 토의를 하였다. 그 중심은 한국어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한국어교육을 하게 되면 영어교육에 지장이 없을까.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데.... 사람들은 여기서 멈칫거렸다. 정말 그럴까? 하여튼 체험한 일이 없는 첫걸음은 불안하였지만, 67년부터 뉴욕의 한 두 교회가 한글학교의 문을 열었다.

1978년, 뉴욕한국일보는 ‘이민생활 체험 수기’를 모집하였다. 총 응모작 38편 중 10 작품이 입상작품으로 선정되었다. 놀라운 것은 이들 중에 10대 소년 한 명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이다. 시상식에 나온 수상자를 보면서, 앞으로 그의 언어생활이 어떻게 성장할까 상상해 보았다.


영어는 가까워지고, 한국어는 멀어질까? 아니면 영어 실력이 한국어에 뒤질까? 한국어와 영어를 같은 정도로 완전하게 소화할 수 있을까? 끝없는 상상을 하면서 그를 계속 지켜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그가 뉴욕지역에서 성장하기를 바랐다.

대학에서 공부할 때 부러운 것이 있었다. 그들의 연구 자료가 오랜 기간 동안 축적되었음을 볼 때였다. 예를 들어 다섯 살 때 어떤 테스트를 받은 학생이 성인이 되었을 때, 다시 한 번 그를 만나 변화 과정 점검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교육은 계속적인 성장기록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 체험 수기의 어린 수상자를 20년, 30년 후에 다시 만나게 되면 이중언어˙다중언어 사용에 관한 몇 가지 의문이 풀릴 것 같지만… 그래서 그의 이름이 필자의 마음속에 조용히 가라앉게 되었다.

어느 날 뜻밖에 그의 이름을 어떤 지면에서 보았다. 그가 같은 사람인가 알아보려고 몇 번 시도하였으나, 알아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중 이번 여름 연수회에서 그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1978년 시상식 후 35년만의 만남에서, 그동안 품고 있던 문제들의 답이 한꺼번에 풀리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첫째, 그의 한국어 실력은 한국내서 교육 받은 사람들과 같았다. 둘째, 그의 영어 실력은 대학교수가 직업인 것으로 증명된다. 셋째, 그의 연구 결과는 첨단 지식이다. 넷째, 그의 강의하는 모습은 21세기 뉴욕스타일이다. 이민 초기 어린 나이에 용감하게 ‘이민생활 체험 수기’ 모집에 응모한 그는 지혜와 용기로 현재의 오늘을 이룩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성과로 동포사회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자녀들에게 한국어˙한국문화 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과목이다. 한국어와 영어교육은 서로 돕는다. 현재는 이중언어교육에서 다중언어교육으로 가고 있다. 내 자신이 이처럼 자신 있고 당당하게 미국생활을 하고 있는 밑받침은 한국적인 교육이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새로운 사고방식˙새로운 학설˙새로운 친구 만들기 등이다. 이중언어, 다중언어 생활이 여러 가지 문화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새롭고 넓은 사고력을 갖도록 돕는다는 메시지를 뚜렷하게 전하고 있다.

그래서 청강생 중의 한 명인 필자가 하나의 제안을 하였다. 오늘 강사가 온 마음과 몸으로 전한 메시지는 귀한 것인데, 더 알고 싶은 것이 있다. 오늘에 이르게 된 강사의 지혜와 노력을 아울러 피력하면 참고가 되겠다. 얼마나 지혜롭게 시간을 구분하였으며, 어떤 방법으로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를 완전하게 구사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다. 다음 기회의 강의 주제로 이것이 채택되기를 바란다고 부탁하였다.

우리들은 이론보다 실적이 보고 싶다. 그럴듯한 이론보다 그 결과물이 보고 싶다. 요즈음의 연구 결과로는 단순한 한 가지 언어 사용자보다, 몇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예민하게 주위상황을 이해하며,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고, 다른 문화를 즐기는 등등 좋은 방향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60년대 이민 초기에 염려하던 일들에 대한 확실한 결과를 보여준 옛소년에게 감사한다.

미국의 ‘자유’는 사용하는 언어의 자유를 포함한다. 영어사용은 사회인으로 자격을 갖추게 한다. 한국어 사용은 마음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한다. 다중언어 사용은 삶의 세계를 넓힌다. 이렇게 생활 언어의 범위를 확대하는 일은 내 자신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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