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 친구, 쿠키

2013-07-11 (목)
크게 작게

▶ 김 범 수 <치과의사>

12년을 같이 산 털북숭이 쿠키가 죽었다. 에어데일 테리어종의 쿠키는 검정과 고동색의 긴 털이 제멋대로 뒤섞여 마치 까만 오레오 쿠키를 먹다가 흘린 것 같이 지저분해서 붙여준 이름이다. 나는 그 지저분하게 긴 털이 좋았다. 엎드려 있으면 이쪽이 얼굴인지 엉덩이인지 구분이 안 가서 더러워진 막대걸레 같은 쿠키가 나는 좋았다. 털이 자라면 두 눈을 덮어서 앞이 보일까 싶어도 한 번은 그 눈썹을 싹둑 잘랐다가 곧바로 눈병에 걸려 고생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털로 뒤덮인 두 눈에 나이 들면서 백내장이 오더니 죽기 얼마 전부터는 앞을 보지 못했다.

쿠키는 흐려진 시력 때문에, 평생을 살았던 집안의 벽에도 부딪쳤다. “쿠키야, 하나 둘 셋… 여섯 걸음 걸으면 벽이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하나 둘 셋… 일곱 걸음 걸으면 방문이다.” 하고 몇 번씩 연습을 시켜도 다음날에는 또 아무 모서리에나 머리를 부딪쳤고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졌다.

누워 있으면 점점 근육을 잃는 것은 개나 사람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허리 디스크로 뒷다리에 힘이 없어서 잘 걷지도 못하는 쿠키를 불러 나는 매일 동네 산책을 시켰다. “쿠키야! 네가 좋아하는 여자 친구 브라우니네 집 있는 데까지만 걷자.” 한 블락 건너 대여섯 집 앞을 지나자 질질 끌다시피 하던 뒷다리가 엉키면서 풀썩 주저앉는다. 아무리 일어나려 해도 다리가 말을 안 듣는다. 쿠키는 나의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채 창피해 한다. “괜찮어. 누구나 넘어질 수 있어. 다시 해보자.”눈이 안 보이면서 쿠키는 귀도 듣지 못했다. 멀리서부터 자동차 소리를 분간하고 현관 앞까지 달려 나오던 쿠키는 문을 열고 들어서서 자기 코앞에까지 와야 비로소 머리를 내 발에 묻었고 흐린 두 눈에는 반가움의 표시인 물기가 어리곤 하였다.


개의 평균 수명을 15세로 본다면 내 눈앞에서 쿠키는 12년 동안 생로병사 단계를 축소과정으로 다 거치고 떠나갔다. 한 사람의 일생을 고속 카메라로 찍어 단숨에 보면 이런 기분일까? 오백 살 먹은 장수거북이도 고작 팔구십년 살다가 세상 떠나는 자기 주인들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미래라는 개념도 허상이고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도 덧없기는 마찬가지라고 거북이가 쯧쯧… 하며 다시 목을 쑤욱 집어넣은 것은 아닐까? 불교에서 말하는 8종의 고뇌 가운데 앞서 말한 생로병사 네 가지 다음에 꼽는 것이 사랑하는 자와의 이별인 것을 보면, ‘다시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리!’가 노래 가사만은 아닐 것이다.

혼자 힘으로 일어나 앉지를 못하게 되면서 누가 옮겨주기 전에는 하루 종일 내 책상 곁 자기 침대에 엎드려 지내곤 하였다. 내가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로 일을 하는 동안에는 턱을 나의 발등 위에 고이고 나와 눈이 마주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혹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의자 위에 걸어둔 내 옷을 끌어다가 나의 냄새가 밴 옷가지를 베고 누워 밤이 깊도록 기다렸다. 마지막 날, 병원에서 쿠키는 자꾸만 떨어지려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눈앞을 가리는 긴 털을 쓸어 올려주었을 때… 쿠키의 힘없는 두 눈에 물기가 고인 것을 보았다. 아니, 어쩌면 나의 눈에 고인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안녕, 쿠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