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명품업체들의 석연찮은 짝퉁 소송

2013-07-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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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하(사회1팀 기자)

한인 커스텀주얼리 업체나 가방업체를 상대로 한 유명 명품브랜드 회사들의 ‘디자인 도용’, ‘상표권 무단침해’ 소송이 최근 몇 달 사이 빠르게 늘고 있다.
여성 핸드백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C사는 지난 5월 뉴저지의 한 한인 액세서리 업체가 자신들의 로고가 박힌 스카프를 판매했다며 200만 달러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 스카프가 8달러55센트에 판매된 점을 감안하면 해당 한인업주는 무려 23만배에 달하는 액수를 물어주게 생긴 것이다.

또 다른 여성핸드백 및 액세서리 생산업체인 T사 역시 지난 한달동안 무려 5개의 한인 커스텀 주얼리 회사를 상대로 디자인 도용소송을 제기했다. 정확한 소송액수는 소장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변호사 업계는 통상 100만~200만 달러를 요구하는 게 관행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소규모로 운영되는 이들 한인 업체들에겐 분명 엄청난 액수임이 틀림없다.


물론 남의 디자인을 베낀 제품을 생산하거나, 판매하는 건 분명 잘못된 일이다. C사나 T사와 같은 원 디자인 소유주도 자신의 지적재산을 지키는 건 그들만의 권리라고 주장할 것이고, 누구도 이를 비난할 순 없다. 그러나 이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과정을 보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점들이 발견된다.
먼저 ‘사설탐정’을 고용하고 있는 부분이다. C사와 T사는 공통적으로 전문 사설탐정, 즉 조사요원을 고용한 뒤 이들이 뉴욕일원을 비롯 전국 방방곳곳을 돌며 ‘유사 디자인 제품’을 찾아오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사설탐정은 일반 바이어로 위장, 한인 업체를 방문해 조금이라도 디자인이 닮은 제품을 발견하면 현금을 주고 구매를 했던 것이다. 일종의 함정단속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단속이 된 한인업체들을 상대로 한 마구잡이식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디자인이 조금만 닮아있어도 우선 소송부터 거는 건 큰 문제로 지적된다. 통상적으로 문제의 제품에 대해 당장 판매를 중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조차 하지 않은 채 이뤄지는 ‘느긋한 소송’이라는 점이 석연찮다.

자연히 이를 방어하는 입장에선 전열을 가다듬을 수밖에 없는데 이 때 각종 법정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게 된다. C사나 T사에겐 별로 크지 않을 비용이겠지만, 영세 소규모 한인 업체들에겐 사업의 존폐를 고민해야 할 만큼 큰 비용이다.

실제로 T사로부터 소송을 당한 한인 업체의 변호를 맡게 된 한 변호사는 “엄연히 다른 디자인인데도 우선 소송부터 걸고 보자는 대기업의 횡포에 한인회사들이 놀아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들 업체가 디자인 도용 소송을 제기하는 이유는 분명 ‘짝퉁’을 뿌리 뽑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같은 마구잡이식 소송은 그 본래의 목적과 취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 역시 같은 의견이었다. “짝퉁을 없애겠다는 건지, 우리 모두 죽으라는 건지, 아니면 소송비용에 욕심이 생긴 건지 그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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