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시대의 작은 영웅들

2013-07-1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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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종의 기원’의 저자 찰스 다윈의 제자인 영국의 생물학자 토마스 헨리 헉슬리는 자신의 저서 ‘인간사회에서의 생존경쟁’에서 인간사회는 생존경쟁을 통해 진화한다고 하였다. ‘강한 자만이 살아 남는다’는 적자생존의 의미를 확실하게 기술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지리학자이자 사상가인 러시아의 표도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은 진화를 가져오는 가장 중요한 힘으로 ‘상호공존’을 강조했다. 서로가 협력하고 보듬는 종(種)일수록 살아남을 수 있고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자본주의가 낳은 심각한 경쟁구조와 개인주의 팽배로 인심이 갈수록 각박해져가면서 사람들은 주위의 어려움에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이제는 너도 나도 상관 않는 무관심, 외면의 분위기가 거의 일상화 되었다. 이런 시대에 남을 위해 희생한다는 건 극히 힘든 일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나 희생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사막의 오아시스, 한 가닥 샘물처럼 갈증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의 목을 시원하게 해주는 일종의 청량제와도 같다. 우리는 이런 헌신적인 사람들을 두고 ‘영웅’이라 칭한다.


지난 주말 사망자 두 명, 부상자 180여명을 낳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일어난 아시아나 항공기 충돌사고 현장에서 드러난 작은 영웅들의 헌신적 희생에 수많은 미국인과 전 세계인들이 감동을 받고 있다. 끔찍하고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돌보지 않고 승객을 구조해 희생자 수를 크게 줄인 이들의 미담이 희생자와 가족, 그리고 기체가 떨어져 나가고 화염에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보는 우리들의 마음을 그나마 훈훈하게 만들었다.
갈비뼈가 부러졌음에도 부상자 50여명의 병원 이송을 도운 미국인승객, 부상어린이를 등에 업고 사방으로 뛴 눈물범벅의 승무원, 대피를 끝까지 도운 최선임 승무원 등 당시 상황은 수분 후 비행기가 폭발, 조금만 더 지체했어도 훨씬 더 많은 사상자를 속출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긴박한 현장에서 이들이 보여준 차분하고 신속한 대처에 미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들이 가슴 뭉클해 하면서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우리는 이런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이따금 접한다. 지하철이나 기차선로에 떨어진 사람, 물속에 빠진 사람 등을 몸을 던져 구조하는 작은영웅들에 관한 미담이다. 이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도 희망이 있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작은 샘물이 곳곳에서 모이면 강물이 되고 강물이 모이면 거대한 바다를 이루어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행하는 아름다운 헌신이 많이 모이면 우리 사회는 그만큼 문제가 줄어들고 밝고 환한 세상이 될 수 있다.

근래 한창 거론되는 뇌 과학 분야에서 이는 충분히 입증됐다. 한국의 대표적인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는 어려운 누군가를 도우면 당장 나의 마음에 보람감이 생겨 정신적으로도 좋고 누구든지 이런 좋은 일을 하게 되면 세로토닌 에너지와 같은 긍정적인 플러스 효과가 뇌에서 생긴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선순환이 이뤄진다고 하였다. 행복 바이러스가 사방팔방으로 번져나간다는 의미다.

뇌내혁명(腦內革命)으로 선풍적 관심을 일으킨 일본인 전문의 하루야마 시게오박사나 많은 뇌과학분야의 학자들이 밝힌 이론을 새삼 들추지 않더라도 좋은 생각을 하게 되면 뇌에서 좋은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들의 종합적인 지론에 따르면 그 호르몬은 인간의 기분을 편안하게 하고 의욕을 갖게 할 뿐 아니라 잠재력을 활용시켜 자신도 상상 못했던 능력을 크게 발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사고에서 특히 위기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구조에 헌신을 다했던 승무원들은 평소에도 좋은 생각을 갖는 훈련이 확실하게 되어있었음이 분명하다.

작은 영웅들의 헌신은 위기시 남을 생각하는 긍정적인 마음과 상호공존을 위한 자기희생적인 정신이 철저히 몸에 배어있었을 때만이 나올 수 있는 행위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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