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장과 단장

2013-07-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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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무르익은 여름철, 숲 속의 나무들이 단장을 다 끝내고 강한 햇볕을 쪼이며 그동안의 수고를 다 내려놓고 여유를 즐기려는 듯 조용히 흔들거리고 있다.화장과 단장은 내용이 전혀 다르다. 화장은 화려한 쪽을 선택해서 치장을 하는 얼굴 미용이지만 단장은 몸과 마음을 맑고 가지런히 정리하는 인격의 표현을 위한 작은 노력이다.
명심보감에 밝혀놓은 몇가지 간단한 조항이 화장을 위한 말이 아니라 모두 단장의 중요함을 말해 주듯이 여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화장이 아니라 단장인 것이다.

말솜씨에도 꾸며대는 화장술이 아니라 정리된 단장이 필요하고 연지곤지로 본 얼굴을 화려하게 꾸며 감추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과 얼굴을 깨끗하고 단정하게 꾸미는 것이 단장이다.화장도 한듯 안한듯 엷게 한다면 그것은 화장이 아니라 단장인데 얼굴 하나에도 화장품을 겹겹으로 바른다. 화장품의 독성이 젊어서는 나타나지 않지만 나이 들어 늙어지게 되면 그 결과가 나타난다. 늙은 여배우의 얼굴들이 추하게 일그러지고 얼굴 피부가 다 죽어 푸르등등하고 검게 죽은 것은 화장을 너무 많이 한 결과인 것이다.


자연은 인공의 화장을 하지 않는다. 단장을 할 뿐이다. 그래서 자연은 늘 제 모습을 가지고 해마다 변하지 않은 제 모습으로 한 해 한해를 지켜간다. 화장을 하는 부류는 오직 사람들 뿐이다.

단장은 있는 그대로를 정리하고 깨끗히 해서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몸과 마음을 단장하면 존경하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든다. 단장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정리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것 쯤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인데 요즘 세상에는 단장을 위한 단장 화장품은 없고 본 얼굴을 감추고 남의 이목을 잡으려는 화장품만 화려한 진열장에서 이상한 미소를 흘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손짓을 하고 있다.

화장품을 만드는 공장은 있어도 단장을 위한 공장은 어디에도 없다. 잘못을 저지르면 잘못을 뉘우치려는 단장보다 잘못을 감추려는 화장으로 잘못을 덮으려는 사람들의 화장품은 색깔이 더 화려하고 진하다.

목소리를 낯추고 귓속말로 소근대는 사람은 남을 음해하려는 사람이고, 처자식을 버리고 외도한 사람은 용서가 허락되지 않는 인생사기꾼이다. 말이란 귀에 걸면 귀거리 목에 걸면 목거리가 되기 쉬운 도구라 화장을 잘 하는 사람 일수록 말을 모욕한다.

말이 많은 세상, 희로애락 표현에 필요한 이 진실한 말을 화장품의 용도로 쓰게 되면 세상은 점점 더 어지러워 진다. 그래서 말은 아껴서 써야 한다고 현자들은 가르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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