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상처가 아물면 보석이 된다

2013-07-0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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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

몸 안에 모래가 들어오지 않는 조개가 없듯이, 상처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그 상처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태도를 선택하느냐, 이것이 다를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처가 하나도 없는 진공관 같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은 아픈 상처가 나를 엄습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피하지 않고, 그것과 긍정적으로 맞서서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 내는 창의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죽음의 수용소”의 저자로 유명한 빅톨 프랭클(Viktor Frankl)이 아우슈비츠에 잡혀갔을 때 인간 이하의 모욕을 당하고 집필 중이던 원고마저 압수당했다. 이 일로 인해 프랭클은 마음과 인격에 큰 상처를 입었고, 희망과 의욕을 상실했다. 그 밤에 자살하려는 마음까지 먹었다. 바로 그때였다.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서 의미 있는 행동을 취하라. 인생을 두 번째로 사는 것처럼 지금 살아라.”는 옛 성인의 기도문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프랭클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상처를 잊고 원고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상처를 잊고 원고를 다시 쓴다는 것은 그 행위자체보다 긍정적 자아 형성에 더 큰 뜻이 있다. 그것은 삶의 의미의 재발견이고 정체성의 재확립이었다. 이 결단으로 그는 끝까지 절망하지 않고 살아남았고, 그의 스승이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능가하는 비엔나 학파의 거장이 되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가는 페인트는 옻칠이다. 청자나 백자에 칠한 우과청천(雨過晴天)의 비색은 천 년을 가는데, 옻칠의 수명은 무려 이천년 이상 간다. 그래서 팔만대장경 같은 국보급 문화재에는 다 옻칠이 덧입혀 있고, 아직도 그 색조와 형태가 건재하다.

옻칠의 원료가 되는 옻 수액은 상처를 내어 채취한다. 채취자가 옻나무의 뿌리에서 약 30센티미터 위쪽부분에 날카로운 칼로 굵어 깊은 상처를 내면, 옻나무는 하얀 수액을 만들어 아픈 상처를 겹겹이 감싼다. 조개가 날카로운 모래에 상처를 입으면 그 상처를 감싸기 위해 "네이커(nacre)"라는 물질을 분비해 감싸는 것과 똑같다.
이때 나무 표피 밖으로 흘러나온 수액을 받아낸 것이 바로 옻 수액이다. 이런 방법으로 한 사람이 일 년에 채취할 수 있는 수액이 겨우 300그램 정도에 불과하니 나무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물질치곤 참 소중한 물질이다.

사람도 이와 같다. 삶의 가장 아름답고 귀한 것은 아픈 상처를 통해서 성취되거나 만들어 질 때가 많다. 얍복강 기슭에서 하나님의 손에 상처를 입은 후 새롭게 거듭난 야곱을 보라. 야곱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약삭빠르게 살았던 인물이다. 장자권의 축복도 형 에서를 감쪽같이 속여서 얻었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 20년 동안 머슴으로 살면서 치열한 이기주의 처세술을 발휘하여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그의 내면은 기쁨과 행복보다는 허무와 무의미로 가득 찼다. 왜 그랬을까. 상처를 통해서 성장하지 않고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쉬운 방법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야곱은 상처가 인생의 스승이라는 것을 몰랐다. 상처가 변하여 보석이 되고, 상처에서 흐른 수액이 자신의 삶을 감싸는 보호자가 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 진리를 깨닫게 하려고 상처를 안겨 주었다.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잠시 동안 아프게 한 것이다.

하나님의 상처를 입은 야곱은 아픈 상처를 감싸기 위해 수액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게 기도다. 상처를 감싸는 야곱의 기도는 간절하고 애절하여 밤이 새도록 얍복강 기슭을 메아리 쳤다. 새벽이 되자 상처가 아문 그 자리에서 보석 같이 빛나는 새 축복이 다가왔다. 상처를 피하지 말라. 역설적이지만 삶의 빛나는 영광은 상처를 통해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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