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식.지혜 주머니

2013-07-0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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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큰 독이 깨지면서 물과 어린이가 쏟아져 나오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환호성을 올린다. 이게 필자가 어릴 적에 본 그림이다. 중국 고사라고 기억되는 이 장면을 보면서 그것이 어린이의 지혜였다고 하여 더욱 놀랐다. 허둥지둥 덤비는 어른들 틈에서 어떻게 그런 신기한 생각을 어린이가 하였을까. 어쩌다 젖먹이 어린이를 물독에 빠뜨렸을 때 또 다른 어린이의 지혜가 돌로 물독을 깨뜨린 것이다.

이솝우화는 세계인이 즐기며 읽는 이야기다. 교훈적, 풍자적인 내용을 동식물 등에 빗대어 엮은 우화는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삶의 지혜를 얻는다. 그러니까 토끼처럼 재주가 있어도 자만하고 게으르면, 느림보 거북이한테 진다. 그러면 무엇이 좋아? 하지만 재주는 길러야 하고, 그걸 믿고 게으르면 안 된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어디가 재미있었지?” 이 한 가지 물음이면 충분하다. 나머지는 어린이들이 생각하면 되고, 이것이 우화를 다루는 방법이다.


“왜 공부를 해야 하지요?” 가끔 어린이들이 던지는 질문이다. 글쎄, 왜일까? ‘지식’이란 배우거나 연구하여 알게 된 내용이나 그 범위다. 말하자면 살아나갈 때 필요한 도구이다. 지식이 모자라면 때로는 불편하고, 불이익을 당하고, 답답하고, 억울함도 당할 수 있다. 지식은 많이 쌓일수록 세상을 살아가는 넓이와 깊이를 주는 힘을 가졌다. 일상생활을 풍족하게 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한다든지, 관심 있는 일을 연구하거나 즐기는 데도 지식이 토대가 된다. 새로운 지식의 종류가 나날이 증가하는 요즈음은 각자가 원하는 방면의 연구를 할 수 있는 좋은 계절이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기성세대가 미래 세대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형이 동생에게… 주고 싶은 주머니가 여러 개 있다. 건강주머니, 자녀주머니, 친구주머니, 재산주머니… 그리고 지식.지혜 주머니일 것이다. 이것들을 물려주고 싶어서 선배들은 최선을 다 하고, 정성을 쏟는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앞의 여러 가지의 기반을 이루는 것이 지식과 지혜를 길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들이 있으면 대부분의 일이 해결될 듯하다. 건강관리도 체질에 맞게 실천할 것이고, 생활 여건도 소질에 맞게 개척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사람의 ­뜻으로 할 수 있는 일에 한정된다는 한계가 따른다.

지식과 지혜는 다른 개념이다. 지식이 배우거나 연구하여 얻은 내용이나 범위인 반면, 지혜는 사물의 도리나 선악 따위를 잘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 즉 슬기를 말한다. 교육기관, 독서, 연구회 등에서 얻는 것은 주로 지식이다. 삶의 연륜, 개별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얻는 생각은 지혜이다. 그래서 지식이 많은 사람은 책이 많고, 지혜가 많은 사람은 삶의 경험이 풍부한 것으로 보게 된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자녀에게 묻는다. “엄마, 아빠 중 누가 더 중요한가”라고. 지식이 많은 사람과 지혜가 많은 사람은 사회에 공헌하는 분야가 다르다. 때로는 한 가지 같은 일에서도 공헌하는 각도가 다르다. 그러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덜 익은 지식보다는 푹 익은 지식의 공헌도가 높다. 문득 떠오르는 지혜보다는 뿌리 깊은 지혜가 확실한 공헌을 한다. 때로는 언뜻 떠오른 것으로 보이는 지혜도 사실은 깊은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여기에 ‘지능’을 보탠다. 지식을 쌓거나 사물을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이 지능이다. 각자의 지능지수 IQ가 때로는 관심사가 된다. IQ나 EQ(정서지수)는 하나의 자료일 뿐이다. 여기에 휘둘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지식을 풍부히 하고, 지혜를 닦는 일이다. 이런 노력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고, 매일의 생활습관에서 모이고 쌓인 결과이다. 지식과 지혜주머니를 알차게 크게 만드는 일은 계절과 관계가 없음이 또한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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