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용서와 화합

2013-06-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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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남아프리카 공화국 민주화의 상징인 넬슨 만델라(95)가 지난 23일 밤부터 중태에 빠져 생사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그가 입원한 남아프리카 수도 프리토리아의 메디클리닉 심장병원 정문 인근에는 쾌유를 비는 사람들이 풍선, 꽃다발, 사진 등을 들고 나날이 몰려들고 있다.

지난 8일 폐감염증이 재발해 병원에 입원 중인 만델라는 장기간의 감옥생활과 강제 노역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각종 질환에 시달려 왔다고 한다. 그 중 폐질환은 가장 심각한 고질병이며 수감시절 수년간 채석장에서 일하면서 석회암의 알칼리 성분이 눈물길을 마르게 했고 통증을 유발시켜 눈도 탈이 났다고 한다. 인간의 삶이 길어야 80~90년인데 만델라는 무려 27년을 감옥에 있었으니 단 한번 뿐인 삶의 3분의 1이상을 갇혀 지낸 것이다.


1950년 남아프리카 연방 백인정권은 모든 사람을 인종대로 분류하여 강제로 인종별 분리거주를 실시했다. 이 악명 높은 인종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의 철폐를 위해 투쟁하다 수감된 만델라는 1964년 44세때 종신형을 선고받아 수감된 뒤 71세인 1990년에 석방됐다. 만델라는 1995년 자서전 ‘자유를 향한 긴 여정( Long Walk to Freedom)’을 펴냈다. 자신의 출생배경부터 젊은 시절, 투쟁의 역사를 다룬 이 책은 고통을 통해 깨달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의 소중함을 진실되게, 당당하게 말해 뉴욕타임스가 뽑은 20세기 최고의 책으로 평가됐다. 그의 희생으로 인해 남아공 시민들은 사회, 경제적 자유뿐 아니라 언론, 이동, 결사의 자유까지 누릴 수 있고 희망을 가슴에 품게 되었다.

27년 만에 출소한 그는 순박한 시골아저씨 같은 인상에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보고 감사하며 땅을 보고 감사하며 물을 마시며도 감사하고 음식을 먹을 때도 감사했으며 강제노역을 할 때도 감사했고 늘 범사에 감사하며 생활했기에 건강을 지킬 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만델라는 199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76세인 1994년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에 당선됐다. 수감 중에 장남이 사망하고 출옥 후 두 번째 아내와 이혼하고 다시 결혼하는 등 가정적 아픔 중에도 용서와 화해의 리더십으로 빛나는 삶을 마무리 해온 그는 소위 ‘세상을 바꾼 사람’이었다.

한국인으로 ‘민주화의 큰 별’이라는 칭호를 받는 김근태도 고문 후유증인 파킨슨병을 앓다가 2011년 12월 64세로 사망했다.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군부 독재와 맞서 싸우다가 1985년 고문 기술자 이근안한테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이가 아파도 고문대 기억 때문에 치과 치료를 포기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고문한 이근안을 용서했다. 정작 고문 후유증으로 본인은 생명을 잃었지만 용기, 헌신, 화합의 정신을 남기고 간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가 쓴 ‘감옥으로부터의 편지’가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27세인 1968년 통혁당사건으로 투옥되어 20년간 수형생활 후 47세인 1988년 가석방된 그는 인간이 가장 황폐화 될 수 있는 조건 속에서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직한 어리석음 그것이 곧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고 내용입니다.”

소주 ‘처음처럼’ 로고체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목공, 제화공, 재단사 등으로 직접 노동자 생활을 체험하며 20년간의 수감생활동안 보이는 것은 벽뿐인 공간에서 삶에 대해 깊이 성찰했다. 원망과 미움을 버리고 모든 것에 대한 용서와 이해 없이는 이러한 글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넬슨 만델라의 사후에 일어날 수 있는 인종 갈등이 예측되자 남아공 주가가 폭락하고 사회적 분위기가 불안해지자 남아공 주민들은 만델라의 용서와 화합의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남아공뿐만 아니라 지금의 한국이나 미국, 어느 나라에나 절실한 것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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