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공호흡기 제거를 유언으로

2013-06-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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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내 (컬럼비아 의대 임상조교수)

김 모씨가 양로원에 갔다 왔다. 어머니가 의식을 잃은 채 지난 몇 개월 동안 양로원에서 인공호흡기와 정관식이법(Tube feeding)으로 생명을 연명해가고 있었다. 의사가 김씨에게 인공호흡기를 떼어도 좋겠는가 하고 물었다고 했다. “떼어버리는 게 좋지요” 하고 의견을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김씨는 화를 냈다.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면 어머니가 죽게 되는데, 왜 내가 어머니를 살인한단 말이야. 어머니를 살인할 수는 없다!” 하면서 인공호흡기를 떼지 못하게 했다. 그 후 3개월을 더 살다가 그의 어머니는 별세했다.

또 미세스 박의 어머니도 양로원에서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연장해가고 있다. 미세스 박은 어머니를 자주 방문했다. 어머니는 아무런 의식도 없는 식물인간이다. 그저 인공호흡기로 호흡만 하고 있을 뿐이다. 심장이 뛰고 있으니까 살아있다고 볼 수는 있지만, 그래도 의식도 없고 반응도 없으니 살아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타인들과 의미 있는 대인관계를 맺을 수가 없다면 인간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미세스 박은 열렬한 기독교 신자였다.


“당신은 기독교 신자. 영혼의 존재를 믿고 있지요” 하고 물어보았다. 믿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당신 어머니의 영혼을 식물인간의 육체 속에 오래도록 가두어두고자 합니까?” 물론 영혼을 식물인간 육체 속에 일부러 가두어두고 싶은 자녀들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영혼을 빨리 해방시켜 천당으로 가게 해서 천당에서 행복하게 사시도록 해드리는 게 좋지 않겠소?” 하고 반문했다.

미세스 박도 자기의 심정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화를 냈다. 자기 어머니를 죽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녀도 인공호흡기를 떼지 못하게 했다. 그녀 어머니는 6개월 더 살다가 타계했다.인공호흡기를 떼개 하면 자기 어머니를 죽인다는 사고방식 때문에 많은 자녀들이 인공호흡기를 떼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의식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죽을 때 제대로 죽지 못해 인공호흡기로 살아가고 있는 본인도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부모를 간병하는 것 또한 자녀들에게 커다란 고통이고 아픔일 수밖에 없다. 이런 괴로움과 고통을 피하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부모들이 살아있을 때 자녀들에게, 만약 자기가 의식을 잃은 채 식물인간으로 인공공호흡기에 의지해서 살아갈 처지가 되면, 부모가, 자기는 식물인간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싶지 않으니까, 인공호흡기를 떼어버리라고 미리 유언을 해줄 것 같으면, 본인도 제 때에 죽어서 좋고, 자녀들도 부모를 살인한다는 죄의식을 갖지 않고 인공호흡기를 제거해줄 수가 있어 좋다.

가야할 때를 알고 가는 이의 뒷 모습은 차라리 아름답다고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죽을 때가 되어서 죽어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제 때에 죽게끔 도와주는 것이 오히려 자녀들이 해야 할 의무가 아닐까,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어느 땐가는 꼭 죽게끔 되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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