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년기를 우아(優雅)하게

2013-06-2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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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아동문학가 / 목사)

인생의 행복은 건강하게 늙는 것이며 인간의 아름다움은 우아하게 늙는 것이다. 연륜이 피부를 주름지게 하지만 그 정신과 영혼까지 주름잡혀서는 안 된다. 사람을 보기 흉하게 늙게 하는 다섯 가지 독약이 있다. 걱정, 의심, 두려움, 절망과 불신이다. 불신에는 자기자신을 믿지 못하는 마음과 영원을 믿지 못하는 두 가지가 다 포함된다. 이 다섯 가지는 인간을 조금씩 짓눌러 무덤으로 끌어들인다.

사람은 자기의 의심만큼 늙고 믿음만큼 젊어진다. 두려워하는 만큼 늙고 자신감 만큼 젊어진다. 절망하는 만큼 늙고 소망하는 만큼 젊어진다. 마음문을 닫는 만큼 늙고 사랑하는 만큼 젊어진다.


늙는다는 것에 너무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는 없다. 늙는다는 것은 저녁 때 더 피곤하고 아침에 의욕이 약간 낮아지는 현상일 뿐이다. 비난의 말씨가 조금 부드러워지고 인간에의 애착이 조금 더 절실해지는 것 뿐이며, 친구에 대한 사랑이 약간 더 강해지고 진리를 생각하는 열의가 조금 더 높아진 것 뿐이다. 늙는다는 것은 이전보다 조금 더 아량과 이해심이 넓어진 것이며 조금은 삶의 의미를 아는 듯한 생각의 진보를 가져온 것이다.
우아하게 늙는 사람은 무슨 일에나 끼어들려 하지 않고 모든 일에 간섭하려 하지 않는다. 입을 열 때와 다물 때를 슬기롭게 선택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는다. 아름답게 늙는 사람은 보스가 되려하지 않고 조용히 듣는 자가 되며 넋두리 자랑 불평을 늘어놓지 않는다.

노년기는 참으로 중요하다. 그 때의 인상이 자손과 후세에 그리고 이웃에게 오래오래 남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이름 얼굴을 돌이킬 정도의 냄새를 남긴다면 얼마나 불행한 인생인가!

미국 속담에 ‘닳아 없어지는 것이 녹슬어 없어지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It is better to wear out than to rust out) 이 얼마나 비참한 말인가. 내 인생을 닳고 해질 때까지 입은 옷에 비유하는 것도 비참하고 녹슬어 못쓰게 되는 쇠붙이에 비유하는 것도 어리석다. 늙어가는 것은 닳는 것도 녹스는 것도 아니다.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이 너무나 많고 보람 있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이 너무나 많이 널려있다. 닳고 녹스는 자신을 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소유를 가치있는 것에 투자하는 노년기가 되어야 한다.

젊음을 지불하고 얻은 유일한 보물이 지혜라는 것을 깨달은 노년기는 우아하게 꾸며질 수가 있다. 노년기는 어려서 자전거를 배울 때와 같다. 겁이 나지만 쓰러지지 않으려면 계속 페달을 밟아 움직여야 한다. 사색을 통한 반성과 자기발전의 노력을 무덤에 이를 때까지 계속하는 노년기는 행복하다.

‘훌륭한 외교관은 여자의 생일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의 나이는 절대 기억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슬기로운 노인은 자기의 나이에 매어 살지 않는다. 나이를 잊어버리는 지혜를 터득한다. 이 말은 의미에 살고 세월에 살지 않는다는 뜻이다. 플라톤의 말대로 노년기란 육신의 시력이 약해지면서 정신의 시력이 밝아지는 때이다.

노년기(senescence)와 노쇠(senility)는 구별되어야 한다. 노화와 늙는 것은 다르다. 노화는 생리적인 과정이지만 늙는 것은 정신적인 상태이다. 노화현상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여기에 대한 정신적인 반응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새파란 30대도 그 정신이 늙기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을 늙게 하는 것은 나이가 아니다. 80세가 되어도 인생의 수레바퀴를 힘차게 돌리는 싱싱한 정신을 가진 노인도 많다. 그런 뜻에서 인간이란 자기가 느끼고 있는 정도 밖에 늙지 않는다. 나는 아직 늙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 만큼 늙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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