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토끼뿔 찾아 삼만리

2013-06-18 (화)
크게 작게

▶ 삶 속의 부처

노슐 룽똑은 우리시대의 가장 위대한 티벳의 족첸(궁극의 경지) 수행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열여덟 해 동안 빠툴 린포체(환생한 스님)를 스승으로, 부친을 대하듯 헌신적으로 모셨으며 한 번도 스승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스승 또한 한 치 주저 없는 애정과 자비로 그에게 깨달음을 위한 영감과 무한한 에너지를 주었다.

궁극의 경지를 향한 도정에서, 스승의 일거수일투족은 그에게 은은한 묵시의 꽃향기였으며 생명의 그윽한 숨결이었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은총이었다.


그러한 스승의 무릎 아래서 노슐 룽똑은 정말 신명을 바쳐 공부하고 수행했으며 내면의 정화와 함께 공덕을 쌓아 나갔다. 충분했다. 그는 이미 청정한 본성을 알아차릴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안타깝게도 스승의 주먹 안에 숨겨져 있을, 무언가 내밀한 깨달음의 마지막 정수는 아직 전해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저녁 무렵, 그들이 족첸 사원 뒤편 높은 산의 은둔지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점점 어둠이 짙어졌지만, 검푸른 하늘은 맑게 개여 있어 별들이 쏟아질듯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멀리 저 아래 사원으로부터 이따금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와 적막을 깨뜨리고는 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밤이었다. 스승은 바닥에 누워 족첸 수행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긴 침묵을 깨고 스승은 제자를 불러 나직이 묻는 것이었다.

‘너는 아직 마음의 본성을 알지 못한다고 했었지?’ 제자는 스승의 목소리가 여느 때와는 다름을 느끼고, 마침내 특별한 순간이 도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스승은 망설이듯 띄엄띄엄 뜻밖의 말을 했다. ‘정말 아무 것도 없단다’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였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아들아, 이리 와서 애비 곁에 누워라’ 제자는 조심스레 스승의 곁에 누웠다. 그러자 스승은 그에게 물었다. ‘하늘을 봐라 별들이 반짝이는 것이 보이지?’ 그는 대답했다. ‘예’ 스승은 다시 물었다. ‘저 아래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느냐?’ 그는 대답했다. ‘예’ 스승은 또 다시 물었다. ‘내가 말하는 소리가 들리느냐?’ 그는 대답했다. ‘예’스승과 제자는 잘 정제된 마른소리로 묻고 마른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한 동안, 두 사람은 아스라한 설산 너머로 별이 총총한 밤하늘만 쳐다보았다. 이윽고 스승은 지극히 그냥, 조용하고 담담하게 ‘그래, 족첸의 가르침이란 그런 것이란다. 단지 그뿐이지…’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그 순간 제자인 노슐 룽똑은 경천동지(?)할 깨달음에 도달했다.

깨달음이란 기특한 것이 아니다. 깨달음은 자기 이해와 고집의 색깔로 세계를 환칠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면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볼 수 있게 된다는 냉정하고 메마른 응시의 내적 자각이며, 공성(空性)의 회복을 위한 수행이다.

실상 깨달음은 무엇을 찾는 일이 아니라 자기 고집에서 해방되면 저절로 드러나는 내 안의 청정한 ‘소식’이다.

그러나 중생들은 ‘정말 아무 것도 없다’고 함에도, 마음 안팎으로 그 무엇을 찾아 길 위에서 길을 물으며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마음은 회전목마처럼 걷고 걸어도 떠난 그 자리인 것을… 한숨지으며 때로는 씩씩거리며 걷고 또 걷는다.

오늘도 토끼뿔 찾아 그 머나 먼 길, 꾸역꾸역 ‘회전목마가 돌아간다.’(시인 황병승의 시제)


박 재 욱<나란타 불교아카데미 법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