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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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이 없는 세상

2013-06-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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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몇 년 전 한국에서 이명박정부 시절,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실의 주도하에 민간인과 국회위원에 대한 불법사찰에 이어 국정원이 참여정부 인사에 대해 광범위한 도, 감청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다. 이때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며 한국의 정치후진성에 대해 몹시 못마땅해 했다.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북한테러 조사를 빌미로 참여정부 전직 고위직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과 감시가 이뤄졌다고 주장해 우리들은 이게 어디 먼 나라 이야기를 하나 하고 의아해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것이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보다 인권과 개인의 신상이 보장된다고 믿은 선진국 미국에 이어 이번에는 영국에서도 개인에 대한 도·감청이 자행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얼마 전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의 한 전직 요원이 국가안보국(NSA)의 민간인 전화통화와 개인정보를 감청한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려 수많은 미국인들을 놀라게 했다. 에드워드 스노든(29)은 사실공개 이유를 인류의 기본적 자유를 지키기 위한 양심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정부가 모든 미국인들을 감시하는 비밀첩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통제되고 모든 말과 행동을 기록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는 NSA은 모든 통화를 자동 기록 할 수 있으며 그 어떤 사람의 전화 내용도 알고 싶으면 도청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될 만큼 손쉽게 도청이 가능하다고 했다.


또한 워싱턴 포스트지는 국가안보국과 연방수사국(FBI)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수억명의 가입자를 서비스하는 인터넷 기업 9곳의 중앙서버에 직접 접속해 가입자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NSA는 통신 감청이나 인공위성 등을 활용해 테러징후를 감청 할 수 있도록 하는 해외정보감시법(FIDA)에 의거해 나름 적법한 정보취득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화도청 및 개인 이메일 감지는 이미 지난 2002년 조지 W. 부시대통령이 대통령 령(Executive Order)을 통해 수천 명의 테러 용의자에 대해 법원의 영장 없이 국제전화 및 이메일을 도청 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지난 2001년도 발생한 9.11테러 이후, 국가안보국(NSA)는 테러를 준동했다고 의심하던 알카에다와 연관된 용의자들을 추적하기 위해 지난 10년간 적법한 수색영장 없이 많은 수의 교신을 도청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수년전 AT&T에서 은퇴한 마크 클라인 이라는 통신전문가가 한 집단 소송에 협조하면서 표면화되기도 하였다. AT&T사가 미국정부가 자사 고객들의 전화 및 인터넷커뮤니케이션을 적법하지 않게 감청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고객들의 프라이버시를 해치는 불법을 저질렀다는 요지의 소송이었다.

연루된 정보업체들은 모두 정부 당국의 협조요청에 따라 모든 미국 내 법률을 준수하고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드러난 사건으로 미국도 이제 더 이상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인권이 당연시되는 사회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지난 2005년 개최한 런던 G20회의서 영국이 각국대표단의 인터넷 및 전화 통신내용을 도청한 사실은 미국 국가안보국의 국내외 감청망 실체를 폭로한 미국인 에드워드 스노든이 추가로 공개한 기밀문서에서 드러났음이 이번에 일간 가디언에 의해서 폭로됐다.

이제 믿을 곳은 어디고 없는 세상, 아예 벌거벗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 된 게 아닐까. 누군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마음대로 보고 나의 말을 몰래 훔쳐 듣는다 생각하니 끔찍하고 몸서리가 쳐진다. 인간의 두뇌로 개발한 고도의 최첨단 기기에 우리가 도리어 발목이 잡히는 아이러니, 그것이 21세기 우리의 가엾은 현실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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