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m)oral hazard

2013-06-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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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은(경제팀 차장대우)

4년전 뉴저지 팰리세이즈 팍에서 근무하던 시절이다. 모 식당주인이 자살했다더라, 모 식당주인은 야반도주를 하는 바람에 본인 식당은 물론, 친척이 운영하는 근처 식당까지 문을 닫을 것이다 등등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었다. 진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결국 망자와 통화를 하는 모양새가 됐다. 문을 닫는다는 소문이 퍼졌던 식당도 여전히 멀쩡히 운영 중이다.

최근 비슷한 상황에 또 다시 맞닥뜨렸다. 플러싱의 대형 식당이 곧 문을 닫을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 것이다. 언제 닫느냐고 묻는 기자에게 매니저는 올해 들어 이런 허황된 소문이 구체적으로 돌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정확한 정보통을 통해 들었다며 언제 문을 닫느냐고 지인들까지 재차 묻는가 하면 이곳이 문을 닫을 것이라고 해 다른 연회장을 예약했었다고 아쉬워하는 고객도 있다”며 “식당은 이런 소문이 한번 나면 타격이 큰데 누가 악의적으로 퍼뜨리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4~5년 전에도 비슷한 소문이 돈 적이 있는데 당시에도 리스 계약서를 보여주며 해명까지 했는데 이번에도 그래야 하냐”고 말을 이었다.


‘기표는 기의에 닿지 못하고 미끄러진다’. 말과 그 의미의 관계에 대한 얘기다. 말을 하는 순간 말하는 이의 의도와 의미가 그 말 속에 그대로 반영돼 전달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도 모르게 말을 뱉었건 알고 뱉었건, 어떤 생각으로 그 말을 했건, 내 말과 생각이 내 입을 떠나는 순간에는 더욱 내 통제를 벗어난다.

말이란 얼마나 강력한지 말을 뱉은 순간 말은 사람을 떠돌며 춤을 춘다. ‘저 식당이 문을 언제쯤 닫을까?’라고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문 닫는데요?’로 말을 뱉고, 돌고 돌아 ‘리스 계약에 문제가 발생했고 불경기 여파도 가시지 않아 올 가을에 폐점을 결정했다’로 둔갑하는 건 순식간이다.

경기 부진 이후 식당들을 둘러싼 괴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오럴 해저드(Oral Hazard)’ 수준이다. 법과 제도의 허점을 악용, 대놓고 이익을 챙겼던 월가의 ‘모럴 해저드(Moral Hazard)’에 우리 동네의 오럴 해저드가 절대 뒤지지 않는 것은 틀린 말을 하는 사람, 소문을 전달하는 사람은 ‘무심코’ 던지는 반면, 자영업자에게 직접적으로 미치는 파급효과는 참 길고도 크기 때문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말이, 수달에서 수년을 흉기가 돼 식당을 병들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이란 참 무섭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고 했다. 무심코 돌을 던지기 전에 자신의 돌이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우리 모두 한번쯤은 생각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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