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대 위의 꽃

2013-06-1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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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위의 꽃
박봉구(공연예술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었단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도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단다. 가을에 피울 꽃 한 송이를 위해 봄부터 새는 울었고, 위세 등등해 보이던 천둥도 실상은 그렇게 울고 있었단다. 시인 서정주의 눈에는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보기 위해 구구절절 감추어 졌던 그 수많은 사연들이 그렇게 보였던 것일 게다.

배우는 무대예술의 꽃이다. 연출가의 의도, 화려한 조명과 의상, 무대장치와 사소한 소품 하나도 결국은 배우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프로덕션의 모든 크리에이티브 팀과 크루들이 배우의 대사, 눈빛, 그리고 미세한 움직임마저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그 과정을 통해 배우는 무대 위의 꽃으로 활짝 피어나는 게다. 그렇다 하여 무대 위의 꽃이 배우일 필요만은 없다. 무대 위의 무용수, 연주자, 가수, 모든 공연예술 장르의 무대 위에선 자는 모두 꽃인 것이다. 그 무대 위의 꽃을 피우기 위한 사연들은 무엇이 있을까? 공연 제작자는 꽃을 피우기 위해 농부가 되어 삽을 든다. 땅을 파고 씨 뿌리고 젖먹이를 키우는 어미의 심정으로 꽃을 가꾼다. 따스한 햇살에 감사 하고 거친 비바람에 속을 태운다. 그렇게 꽃을 피운 뒤엔 마치 산후 후유증을 앓는 산모 마냥 몸져눕는다. 그냥 꽃이 아니라 사람 냄새 나는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봄부터 울고,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통곡을 하는 게다.


우리 한인 커뮤니티가 누리는 문화 예술이란 무엇일까 생각 해 본다. 브로드웨이 쇼? 카네기 홀? 다운타운 실험음악? 한인 2세들이 참여하는 오프브로드웨이 연극? 아니라면 노래방? 종교단체의 찬양팀? 한국에서 온 대중가수 공연? 과연 무엇이 우리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공연이고 우리가 즐기는 문화예술 일까?

얼마 전 대통령 방문 동포간담회에서 커뮤니티의 한 정치 관련 인사를 만났다. 일 년에 한두 번쯤 마주 하는 사이지만 그를 익히 알고 있기에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다가 “출세했네요?” 라는 인사말(?)을 들었다. 이런 걸 요사이 신종어로 “헐!”이라고 하는가 보다. 분명 그의 유머를 내가 못 알아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무대 위의 꽃을 피우기 위해 다양한 시각과 변수를 생각해야 하는 공연 제작자는 주어진 환경과 존재하는 주변 사실(fact)로 부터 다양한 가능성을 추론해야 한다. 길에서 연주를 하고 작은 무대를 만드는 ‘딴따라’라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았던 걸까? 그 분은 자신이 출세를 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출세를 하기 위해 커뮤니티를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걸까? 예전에 대통령을 만났던 소년소녀 가장이나 불우한 이웃들은 출세를 한 걸까? 도대체 그의 유머는 찰리 채플린식 접근인가 ,아니면 크리스토퍼 듀랭식일까?

공연예술가는 숙명처럼 한 공연이 끝나면 또 다른 공연을 만들어 간다. 때마침 얼마 전 일화로 한인 커뮤니티 지도층(?) 인사의 의식 한 단면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례를 접했다. 한인 커뮤니티에서 갈망하는 수많은 문화적 욕구 또한 익히 알고 있다. 그러니 다시 삽을 들 수밖에 없다. 한해 농사 끝에 똥값이 된 배추밭을 갈아 없는 농부가 될 지언정, 또 다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처럼 천둥처럼 그렇게 울지만 말고 묵묵히 땅을 가는 게다. 꽃보다 아름다운 관객들을 기다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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