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페이퍼 컴퍼니와 스위스 은행

2013-06-0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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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요즘 한국에서 ‘페이터 컴퍼니’(Paper Company)가 화제이다. 페이퍼 컴퍼니는 재력과 권력, 특권 지배층이 절세와 재산 도피를 위해 이용하는 곳으로 생산이나 영업활동을 하지 않고 서류 형태로만 존재해 회사 기능을 수행한다. 이 페이퍼 컴퍼니는 카리브해의 케이맨 아일랜드, 버진 아일랜드, 바하마, 버뮤다 등 섬나라들과 유럽의 룩셈부르크나 스위스, 아일랜드 등 조세천국에 주로 세워진다.

지난 10일동안 한국의 대표적인 금융인, 예술인, 기업인, 교육자 등이 해외 페이퍼 컴퍼니를 개설하고 비자금을 유출하고 탈세의 주요통로로 이용한 것이 밝혀져 사회 지도층의 도덕성에 먹칠을 했다. 인터넷언론 뉴스타파에 따르면 경영자총연합회 전 회장인 이수영 부부, 김석기 전 중앙종금사장과 연극배우 윤석화 부부를 비롯, 한국인 수백명이 페이퍼 컴퍼니를 개설했다. 특히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가 2004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세운 ‘블루아도니스’라는 페이퍼 컴퍼니에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흘러들어간 것이 아닌 가하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에 검찰과 국세청, 금융감독원은 페이퍼 컴퍼니의 자금거래내역, 탈세여부, 외환거래법 등에 대해 조사 중이다.


페이퍼 컴퍼니 이전에 우리는 스위스 비밀은행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다. 한 독재자가 축출될 때마다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에서 엄청난 돈이 발견되었었다. 파나마 노리에가가 3억달러, 루마니아 차우셰스쿠가 4억달러어치 금괴, 베네수엘라의 페레스 전 대통령 700만 달러, 보리스 옐친의 측근 250억 달러, 말로셰비치 유고 대통령 약 1억 스위스 프랑 등이 은행에 예치되었고 일부는 각국 정부 요청에 의해 동결조치 된 바 있다.

여기서 스위스 은행이란 특정은행이 아니라 고객의 비밀을 지킬 것을 규정한 스위스 은행법에 따르는 스위스 국내 모든 은행을 말한다.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는 예금주 이름 없이 숫자와 문자가 조합된 계좌번호만으로 이루어져 입ㆍ출금, 거래 명세서 작성 등 모든 거래에 이름대신 이 번호만 오가므로 예금주의 신원을 알 수 없다. 스위스 은행이 ‘검은 돈의 천국’이라는 비난이 심해지면서 금융규약을 개정하여 개설 전에 예금주의 신원확인 등 다소 변화를 가져왔고 요즘은 페이퍼 컴퍼니가 돈을 은닉하려는 자들에게 환상적 도피처가 되고 있다.

사실 주위에 스위스 은행계좌나 페이퍼 컴퍼니를 가진 친구는 없다. 이들 돈의 크기는 우리로서 손에 잡히지도 않고 가늠할 수 없는, 일반인하고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어떻게 사람이 평생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든데 이렇게 쉽게 그 많은 돈을, 그것도 남의 돈을 갈취하고 숨겨서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지 의아하다.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놓고 여차하면 해외로 도망갈 궁리를 하고 살다가 발각되면 외출도 못하고 집에 은둔하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에 사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아무런 가책 없이 시간이 가 그저 잠잠해지기만 기다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차제에 검은돈을 모두 찾아내어 국민들에게 돌려주고 범법자들은 감옥에 가거나 죄가 큰 경우 큰 벌이 내려지는 것을 보고 싶다. 그동안 한국 TV 드라마에서 정치인, 재벌, 범죄자가 비자금이나 사기 친 돈, 횡령한 공금 등을 ‘스위스 은행’에 은닉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드라마 내용도 ‘페이퍼 컴퍼니’에 검은돈을 숨기는 것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미주한인들은 모국을 떠나 온 이래 밤낮으로 열심히 일해 자식 교육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한국과 비교해 부의 규모가 다르지만 스스로 피땀 흘리며 번 성실한 노동의 댓가이다. 남의 돈을 탐내지도, 울리지도 않았으며 오로지 내 힘으로 번, 이 하얀 돈을 한국 모교나 고향에 장학금으로 기탁하고 일가친지에게 잔치를 열어주니 참으로 자랑스럽기만 한 돈이다.

비록 우리들은 스위스 은행이나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는 없어도 남을 배려하는 교육부터 배우는 미국에서 교육받은, 평생 든든한 ‘자녀 뱅크’가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잡은 자녀가 “난, 엄마 아빠의 걸어 다니는 뱅크야”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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