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래와 상어

2013-05-3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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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어릴 적 부산에 살 때 동네를 뛰어다니면서 부르던 노래가 있다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좋은 고래고기”. 서울에서 전학 온 아이가 쓰는 나긋나긋한 서울 말씨가 신기해서 초등학교 조무래기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그 아이 뒤를 따라다니면서 놀렸다.
전쟁 후 1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먹고 살기 어려웠던 서민들에게 고래고기는 명태보다 싼 가격에 영양가 있는 고기로 인기가 좋았다. 말려서 살짝 구운 고래고기를 육포처럼 입에 물고서 동네를 뛰어다니던 아이도 있었다.

일본어인 다마내기는 양파를 말했고 양파와 고기를 섞은 고래 불고기나 회, 찜 등 다양한 요리를 해먹었다고 하는데 고래에 대한 추억은 이 노래로 남아있다.
최근 롱아일랜드 바닷가에 고래 한 마리가 방류되었다. 리버헤드 해양연구 및 보전연구소가 2012년 메인 주 해안에서 발견된 돌고래를 6개월간 치료하고 재활훈련을 시킨 후 롱아일랜드 바다로 돌려보낸 것이다. 어른 키의 반만한 크기에 ‘누들’이란 이름의 이 돌고래는 발견당시 상태가 안좋았으나 이 연구소의 보호로 인해 건강상태가 좋아져 바다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고래는 지난 1986년 미국, 호주, 뉴질랜드를 비롯 국제포경위원회에 의해 상업포경 금지가 되어있다.고래가 불법포획 되면서 고래의 숫자가 줄어 생태계의 평형이 깨져버리는 염려 때문이다.그런데 이번에는 고래와 같이 대형 물고기에 속하는 상어가 수난시대를 맞고 있다. 최고급 상어 지느러미 요리를 위해서 상어가 대량살육 되며 생태계가 파괴되는 우려가 나타난 것이다.인도네시아, 코스타리카, 대만, 포르투갈 등지에서 상어를 잡아서는 시퍼런 칼로 지느러미를 싹둑 잘라내고 피가 흐르는 몸통은 바다 속에 던져 버리는 동영상을 보면 너무 끔찍하여 말이 나오지 않는다. 미 연방정부는 2000년 미국 영해에서 상어 지느러미를 떼어내는 이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상어는 꼬리지느러미를 좌우로 흔들며 헤엄치는데 지느러미가 잘리면 더 이상 헤엄을 못 친다. 그러니 다른 고기의 먹이가 되거나 깊은 바다 속에 가라앉아 죽고 만다. 샥스핀 요리를 위해 연간 전세계 상어 포획량이 7,300만 마리라고 한다.
바다의 먹이사슬은 식물성 플랑크톤-동물성 플랑크톤-조개, 말미잘-작은 물고기/생물(멸치,새우)-중간 물고기(정어리,고등어)-큰 물고기(참치,대구)-대형 물고기(상어,고래)로 구성되어 삼각형 피라미드를 이루어야 정상이다. 고래나 상어 같은 대형 물고기가 사라지면 큰 물고기가 급격히 늘어나는 기현상이 나타난다.

그동안 뉴욕 차이나타운에서는 중국과 멕시코 등지에서 샥스핀을 수입하여 뉴요커들은 샥스핀 요리를 먹을 수 있었다. 지난 5일 뉴욕주 하원은 샥스핀 판매와 구입, 보유 등의 전면금지 법안을 상원에 이어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이 법은 앤드루 쿠오모 주지사의 서명을 거쳐 곧바로 발효된다고 했다. 바로 그다음 주에 차이나타운의 중국음식점에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요리 초반부에 샥스핀 수프가 여전히 빠지지 않고 나왔다. 그래서 아하, 이게 가짜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뒤늦게 했다.

중국요리에 없어서는 안될 샥스핀 요리는 청나라 초기부터 먹기 시작 했는데 원래 황제나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청나라가 망하고 국민당 공산당 지도부가 먹기 시작하면서 일반에도 퍼졌고 성대한 연회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리로 알려져 있다.
진짜는 가격이 워낙 비싸다보니 상어젤라틴이 1.5%, 나머지는 각종 첨가물을 넣은 모조 샥스핀이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아무 맛없는 젤 상태의 샥스핀을 일반인은 구별할 수 없다니 아마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 엉터리 샥스핀을 많이 먹었을 것이다.

일리노이, 캘리포니아, 하와이, 오리건, 워싱턴, 메릴랜드 등 6개주에 이어 전국 7번째로 뉴욕에서는 더 이상 상어 지느러미 요리를 팔지 않는다고 한다.
굳이 환경단체 일원이 아니더라도 생태계 보존에 일조한다는 마음에서 위의 7개주외 타주를 방문하더라도 더 이상 샥스핀 요리는 먹지 말자. 요리를 찾지 않으면 그만큼 상어나 고래의 목숨이 보존된다. 이 작은 결심들이 모여 생태계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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