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졸업연설

2013-05-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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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요즘 미국은 졸업시즌이다. 5월초부터 6월 중순까지 미전역 각 대학의 졸업식이 이어지면서 자녀나 친지들의 졸업식에 한두 군데는 참여하게 된다.21일은 NYU 단과대학 졸업식이 링컨센터 등지에서 열렸고 이날 저녁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NYU의 대표색인 보라색으로 치장되어 밤하늘을 장식했다. 22일은 브롱스 양키 스테디엄에서 NYU 전체 졸업생과 학부모, 친지들 1만5,0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성대한 보랏빛 잔치를 치렀다.

이 졸업식에 참여했었다. 양키 스테디엄 1층에 자리한 졸업생들과 경기장 한가운데 설치된 단상을 둘러싸고 1~2미터 간격으로 뉴욕경찰들이 경비를 하고 있고 군데군데 경호요원들이 관중을 살피고 있어 1,2,3층의 가족석에도 CCTV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겠거니 하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지난 4월 15일 보스턴 마라톤 테러의 여파는 이렇게 군중이 모이는 곳에는 여지없이 미치어 이날 ‘뉴욕 뉴욕 뉴욕’ 노래도 급히 하고 모든 행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보통 미국 대학의 졸업식은 어떤 명사가 졸업 연설을 하느냐가 아주 중요하다. 어떤 연사가 올해 졸업연설을 하느냐에 따라 졸업식에 참여하고, 안하고를 결정짓기도 하고 재미있는 졸업식 혹은 지루한 졸업식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졸업연설에는 세계를 이끌어가는 리더들이 참여하여 자신의 생생한 인생체험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등 전ㆍ현직 대통령 뿐 아니라 구글의 최고경영자 에릭 슈미트,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전 회장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오프라 윈프리 그 외 영화배우와 소설가, 코미디언 등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들이 참여하여 졸업생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한마디를 한다.

뉴욕타임스는 명사들의 대학졸업 축사의 주요내용을 발췌 소개하기도 하고 그중 명연설은 유튜브를 통해 전세계인에게 전달되어 오랫동안 삶의 가이드가 되어주기도 한다.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미국의 한 대학교 졸업연설에서 ‘표현의 권리’에 대해서 말했다. “책에 불을 지르는 사람이 되지 말라, 이미 존재하는 증거를 감추는 것으로 잘못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고 도서관에 가서 모든 책을 읽으라. 여러분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책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것만이 유일한 검열이 되어야 한다.”

이는 미국에서 불온서적이 불태워지고 검열이 극대화되었던 시기에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무엇을 가르치는 지 배우고 안 다음에 더 나은 것을 내놓는 방법으로 싸우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여기는 미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즘 보수와 진보로 나뉘고 그 안에서도 갈래로 나눠져 싸우고 있는 한국 정치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또한 빌 게이츠는 2007년 하버드대에서 한 졸업연설문을 무려 6개월이나 고민하여 여섯 번이나 고친 끝에 나왔는데 ‘지구상의 복잡다양한 문제들이 기술의 정보로 단순화 되었다’며 창조적 자본주의 개념을 말했다.

올해 눈에 띄는 졸업연설은 지난 19일 애틀랜타의 흑인 명문대학 모어하우스 졸업식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연설이다. 오바마는 “인종 때문에 실패했다는 것은 이제 변명이다”는 말을 했다. 아직 사회에 인종분리 정책의 유산이나 차별이 남아있지만 그렇게 변명만 할 시간은 없다,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인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이 귀담아 들을만한 내용이다.

졸업연설은 대부분 자신이 살아온 삶의 고난과 역경을 말해 감동을 주기도 하고 기후변화, 기아, 핵확산 문제를 다뤄 봉사하는 마음과 인류애를 고취시키기도 한다.
졸업 가운과 학사모를 쓴 졸업생들은 대체로 들떠있고 흥분해있고 내심 뿌듯해 하는 표정들로 다들 예뻐 보인다.

이 중에는 졸업연설을 들으면서 먼 훗날 자신도 졸업연설 명사로서 저 자리에 설 것이라는 꿈을 꾸는 자도 있을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는 말이 생각나는 시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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