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약자는 울리지 말고 보호하자

2013-05-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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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하(사회1팀 기자)

6억달러 규모의 폰지사기 혐의로 폐쇄 조치된 온라인 다단계 업체 ‘지크리워드’사의 뉴욕일원 한인 피해자들 상당수는 수입이 변변치 않은 일용직 노동자들과 노인 등 서민들로 추정된다. 사태가 발생한 직후 본보에 전화를 걸어와 자신이 직접 투자를 권유해 수백명을 가입시켰다고 한 제보자 역시 “먹고 살만한 사람보다는 하루 벌어 겨우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이 대부분 피해를 입었다”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지크리워드에 투자할 수 있던 1인당 최대 금액은 1만달러. 자신의 수입에 따라 이 돈이 작은 돈으로 느껴질만한 사람도 있겠지만, 피해상황을 본보에 알려온 피해자들 대부분은 1만달러가 자신들에겐 매우 큰 돈이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 여성 피해자는 “10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해 모은 돈에 언니에게 돈까지 꿔서 1만달러를 송금했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나이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수년간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을 다 털어넣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이렇게 사기를 당한 데에는 이들이 처한 어려운 삶이 한 몫을 했다. 누군가 다가와 ‘잘 살 수 있다’는 말이 이미 부유한 사람에겐 별 시답잖은 소리였을지 모르지만, 지긋지긋한 가난을 탈피하고 싶었던 이들 서민들에겐 반가운 소식이었던 것이다.
건강보조식품 회사를 운영하며 직접 텔레비전 광고에 출연해 ‘남자에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냈던 천호식품 김영식 회장은 “사람이 아프면 귀가 얇아져 병에 좋다는 말이면 무엇이든 쉽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지크리워드 사태도 같은 논리로 더 많은 피해자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이런 논리를 또 한 번 악용하는 미꾸라지와 같은 사람들이 한인사회에 다시 등장했다는 소식이 요즘 심심찮게 들린다. 이들은 플러싱 모처에 사무실까지 차려 놓고 지크리워드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사업을 미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사업은 확실하다’는 말로 또 다시 돈을 뜯어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플러싱 일대에서 벌어지는 이들 불법 다단계 영업활동을 관련 수사 기관들이 눈여겨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상황에 따라 이들 영업장에 대한 대규모 체포사태까지도 벌어질 가능성도 열리게 된 것으로 해석된다. 오는 25일 지크리워드를 비롯한 각종 온라인 다단계 피해자를 대상으로 세미나를 개최하는 론 김 뉴욕주하원의원 사무실 관계자 역시 “피해자들의 사례를 종합해 수사촉구와 관련 법안 제출 등을 할 계획”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물론 피해자 중에는 욕심이 과해서 다단계를 쫓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 정황들을 종합해 볼 때 이번 피해자만큼은 대부분 잘 모르고, 가진 게 별로 없는 약자들이다. 다시 말해 더 뜯어먹어야 할 대상이 아닌,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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