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고노병사 (生苦老病死)

2013-05-2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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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사람은 태어나서 저승에 갈 때까지 순서가 있다. 생로병사의 순서다.
원래의 말은 불교에서 나온 중국의 사자성어로 쓰인 생로병사이지만 나는 여기에 고(苦)자 하나를 더 넣어 인생은 생고노병사라고 말을 한다. 이 말이 나왔을 때는 현대가 아니라 농경사회를 일구어 살아갔던 시절이었고, 현대로 탈바꿈한 기계문명과 자본시대를 형성하고 살아가는 지금에 와서는 아무래도 고(苦)자 하나가 더 들어가야 어울릴 것 같아서였다.

농경시대에도 사람 살아가는 데에 쉬운 일은 없었겠지만 고생이라고 할 만큼은 아니었던지 생로병사에 고자 하나는 넣지 않았다.고생은 오히려 편하고 편리해야 할 현대에 와서 더욱 심해졌다. 자고 일어나면 소위 말하는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로 부터 마음과 몸이 시달림을 받는다. 세상이 온통 스트레스다. 그리고는 막막한 하루살이를 해결 하느라 스트레스를 들고 일터로 나간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생활하기에 충분한 급료를 받지 못하면서도 일터로 나간다. 농사일은 몸이 힘들지는 몰라도 마음에 부담은 별로 가지 않는데 현대의 발달되고 세분화 된 일거리에는 스트레스가 보따리로 감추어져 있다.


아무런 불편한 생각 없이 편해야 할 가정에도 농경시대의 가정과는 달리 스트레스가 감추어져 있어 이놈이 툭 하면 튀어져 나와 이유 없이 가정을 괴롭힌다. 가정이라는 것이 이제는 한밤중에 여린 빛을 소리 없이 흔들다가 사라지는 별만이 아니다. 사는 데에 모든 것이 힘이 든다. 힘이 드니 그것이 바로 고생이다.

태어나서 고생을 안 하고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태어나면서 울지 않는 아이 없고 고생하며 늙어가면서 한 숨 내뱉는 사람 없듯이 태생 자체가 기쁨이기 이전에 이미 고생길에 들어 선 것이다. 고생을 하다보면 나이 들어 늙게 되고 늙다보면 병이 들고 병이 들어 시달리다 보면 저승에 갈 채비를 하게 된다. 그래서 저승은 멀수록 좋다.

무슨 이유를 달더라도 인생은 허무한 것이고 허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다 힘들여 키운 자식들 중 하나라도 부모의 마음을 쓰리게 하면 인생은 왜 살아야 했는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고생에 섞여 고생을 싣고 가는 무거운 열차, 인생열차다.

내 아버지도 내 어머니도 자식 일곱을 낳아 가슴을 찢어가며 그러면서 생고노병사라는 순서를 차근차근 밟고 살다 가셨다.이 세상에 오면 보기 싫어도 보였지만 누구나 가서 사는 동네 이름, 가면 안보리… 생고노병사를 다 치루고 나면 결국 사람은 모두 그 마을에 가서 산다.

나도 나이도 어지간히 들었고, 여기 저기 회복하기 힘든 불편에 시달리고 있는 걸 보면 생고노명사의 순서를 하늘이 시키는 대로 지키면서 여기까지 온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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