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권력형 성추행의 현주소

2013-05-1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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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2년전 당시 IMF(국제통화기금) 총재이던 프랑스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이 회의 차 뉴욕에 와서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일이 있었다. 호텔 청소부를 성추행한 혐의로 출국하다 공항에서 체포된 사건 때문이었다. 연루된 청소부는 기니 출신의 딸 하나를 둔 30대 여성이었는데 당시 호텔에서 일을 하다 스트로스 칸으로부터 성적 치욕을 당한 것이다. 당시 이 여성은 “지금 이 세상에 자기 혼자 남겨진 것처럼 고립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며칠째 두려움에 떨며 집에도 들어가기 어려워 딸 애 얼굴도 한번 밖에 못보고 있다”고 공포감을 호소한 바 있다.

성추행 사건은 그만큼 피해여성에게 남겨지는 상처가 심각하다. 하지만 이런 사건은 늘 스캔들로 취급되고 피해여성들은 대체로 꼭꼭 숨어 지내는 처지가 되곤 한다. 그 결과는 평생 자국으로 남아 심리적인 아픔을 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금 한국과 미국을 뒤흔들고 있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 의혹사건은 스트로스 칸이 자행한 성추문 사태보다 훨씬 그 내용이 심각하게 느껴진다. 연일 하나씩 드러나는 그의 추행의혹은 현재 나온 것만으로도 너무나 충격적이다.

현재(14일)까지 나온 보도에 따르면 피해 인턴여성은 사건 첫날 밤 호텔 바에서 권력자의 요구에 밤늦도록 술친구를 해주고 이튿날 새벽에 또 부름을 받았다. 이 여성은 두려워 거부도 못하고 그의 방을 찾았다가 평생 지워지지 않을 끔찍한 광경을 목도했다. 놀라 방에서 뛰쳐나가려 하자 그가 엉덩이를 움켜잡았고 그녀는 이를 완강히 뿌리치고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는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목 놓아 울었다. 아직도 충격에 빠져 있을 이 여학생의 아픔은 누가 치유해 준단 말인가.

이번 사건은 권력층에 있는 갑의 하달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 있는 을의 관계에서 당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총체적인 권력층의 도덕적 해이다. 방에서 뛰쳐나오지 않았다면 크게 봉변을 당할 뻔한 사건이었다. 이 엄청난 사건은 주변의 또 다른 권력자들의 은폐, 회유 등에 소리없이 그냥 묻혀 버릴 뻔 했다.

가뜩이나 성폭행범들이 난무해 여성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이 시대에 한국사회 최고위 국정책임자가 어린 해외 인턴에게 거의 강간미수에 가까운 성추행을 했다는 의혹이 하나하나 드러나는 지금, 미주의 자녀를 둔 많은 학부모들과 여성들은 심한 정신적 공황을 겪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한국사회는 이 사태를 보면서 혀는 끌끌 차지만 이미 사회전반에 만연된 전염병처럼 치부하고 있다는 얘기다.

구성애씨와 같은 한국의 성교육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인의 성문화가 얼마나 불균형하고 불합리한가를 잘 알 수 있다. 남 녀 간의 성별차이뿐 아니라 권력구조에서 갑과 을이라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구도에서 인간관계를 성립하고 그 구조에 매몰되고 순응하며 살아가야만 한다는 전 근대적인 사고방식이 대세기 때문에 나오는 결과이다.

한국 권력층의 성희롱 사건은 몇 년 전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의 여기자 추행 같은 대표적인 성희롱 사건을 포함,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성 스캔들은 성에 대한 한국사회의 기본관념의 저질스러움을 드러내고 있는 거의 현주소나 다름없다. 노블레스 오블리제와 같은 숭고한 철학과는 거리가 먼 일부 그릇된 사회, 정계 지도층 인사들 때문이다.

한순간의 잘못으로 평생 쌓아올린 권력의 높은 산을 한방에 무너뜨리게 된 윤창중 사태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더 겸허하고 말과 행동에 문제가 없어야 된다는 점이다. 또 피해여성은 반드시 증거물과 증인을 재빨리 확보하고 녹취를 해두어야 겠다는 사실이다. 성추행을 당하고도 적극 대처하지 못하고 혼자 평생 아픔을 간직하고 지내는 여성피해자들이 많은 현실에서 이번에 용기있게 경찰에 신고한 문화원 직원에게 “당신은 정말 잘 했어” 라고 칭찬해주고 싶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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