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깁스의 인생

2013-05-1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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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교육가/수필가)
사람이 한평생을 살아 가노라면 한 두번 쯤은 깁스를 한 채, 손이나 발, 때로는 머리, 가슴 등 몸을 가눌 수가 없어 오랜동안 꿈쩍 못하고 고생할 때가 있을 것이다.

지난 2010년 독립기념일에 교회 층계에서 반주자 아이를 안고 내려오다가 층계 마지막계단에 걸려 넘어지고보니 오른 팔이 부러지게 되었다. 그 바람에 팔에 깁스를 허고, 뼈가 붙은 뒤에 통증병원을 다니면서 고생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또 올해 지난 2월3일 이번에는 교회내에 같은 층계 윗쪽에서 물건을 많이 들고 내려 오다 넘어져서 왼쪽팔 뼈가 부서져 홀리네임 병원 응급실에 가서 치료를 받고 깁스를 한 채 집으로 돌아왔었다. 이를 본 딸 애가 너무 기가 막혀 교회의 같은 층계에서 두 번씩이나 넘어져 깁스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애통해 했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왼팔이라 더 가벼울 줄 알았는데 손목을 수술까지 하고 보니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놀기 좋아하는 친구 여러 명이 운동장 한 가운데에 책 가방을 수북히 쌓아 놓은 채로, 삼팔선, 해바라기, 돌차기(갱가), 고무줄 놀이 등, 해가 어둑어둑해 질 때까지 놀다가 집에 오면 어머니께 혼줄이 나서 벌벌 떨던 생각이 새롭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달리기부터 시작해서 탁구, 정구, 배구, 농구 등 안 해본 운동 없이 섭렵하다가 어른이 돼 나이 들어가면서 이제는 노인이 되었다. 그런데 나이는 70이 넘었는데 아직도 머리는 50대 쯤에 머물러 있는 사람, 이런 노인들이 바로 문제있는 노인이 될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너는 안되겠다고, 한 층계에서 두 번씩이나 넘어지게 하여 고생시키시겠는가. 지금은 깊이 반성하고 정말 조심해야 겠다고 마음을 다진다.
두 번씩이나 깁스를 하고 있는 동안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가 아파 보지 않으면, 가난해 보지 않으면, 그 사람들의 심정을 깊이 이해할 수가 없어 간혹 하나님은 그런 지경에 처하게 하시는가 보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서강대학 영문학과 장영희 교수이다. 그는 갓난 아기 때 소아마비를 앓다가 후유증으로 항상 목발에 의지하고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그는 늘 강단에 서서 2세들을 지도하였는데, 주옥 같은 글로써 우리들의 마음을 울리게 한 분으로 2009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또 생후1년6개월 때 심한 열병끝에 3가지 장애를 가지고 하버드 대학을 거쳐 미국의 사회복지사가 된 헬렌 켈러 여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옆에 설리반이라는 훌륭한 교사가 있었다고 하지만,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볼 수 없는데다 말도 할 수 없는 3중고를 앓던 아이가 어떻게 그런 기적의 사람이 될 수 있었단 말인가.

어디 그 뿐인가. 밀알 선교단에 속해있는 모든 지체 부자유자들, 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불편했을까. 그동안 그들을 외면하고 살았던 내 자신을 깊이 반성하며 앞으로는 그들에게 한없는 애정과 관심을 갖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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