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소리와 인간의 정서

2013-05-1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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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빈(교도소 심리학자)

미국에서는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심지일지라도 공원도 군데군데 있고 가로수도 많아서 온갖 새들이 드나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새소리를 좀처럼 들을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생활이 분주하여 새소리에 귀를 기울일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혹시 새소리를 듣고 싶을 때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문명 생활이 가져오는 소음과 잡음은 우리의 청각을 마비시켜서 새소리와 같은 낮은 볼륨의 소리는 잘 들을 수가 없다.

공중을 훨훨 날아다니는 새는 확실히 옛날부터 우리 인간의 환상을 사로잡은 존재이다. 더욱이 그들이 내는 갖가지의 소리는 인간의 정서에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기고 있다. 조류학자의 말에 의하면 모든 새의 울음소리는 그 종의 번식과 생성에 관계되어 있다고 한다. 인간이 언어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듯이 새도 소리 내는 능력을 그 속에 가지고 태어나지만 사람이 언어를 배우듯 새도 그 소리 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귀머거리 새는 인간처럼 소리를 못내는 벙어리가 된다고 한다.


새의 울음이 번식을 위하여 교미 상대를 부르는 소리라면 새의 소리는 결국 사랑의 짝을 부르는 사랑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스펙트로그램에 기록한 조사에 의하면 새소리는 똑같은 소리의 반복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 그 음률과 테마를 조금씩 달리 한다고 한다. 새의 사랑노래는 판에 박은 소리가 아니라 일종의 창작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딘가 우수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는 동양인은 예부터 밤에 슬프게 우는 새의 소리를 더 좋아하였다. 이른 봄 새벽하늘을 치솟으며 노래하는 종달새는 서양적인 새로 간주된다. 밤에 슬프게 우는 새를 들자면 우리의 접동새를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접동새는 고산대지방 침엽수림 속에 사는 부엉이와 같이 생긴 새이다. “님을 사와 우니나니 산 접동새는 이스하요이다”라는 시구에는 이 새의 울음소리와 시인의 감수성이 효과 있게 표현되어 있다. 소쩍당 소쩍당하고 운다하여 소쩍새라는 이름을 가진 이 접동새는 입속이 핏빛이어서 마치 피를 토하며 우는 것과 같다하여 모든 동양 시인의 총애를 받아온 새이다.

미 존슨 대통령은 문명발달은 마치 위스키와 같다는 말을 하였다. 위스키를 알맞게 먹으면 기분이 좋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사람이 쓰러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정의 고갈과 인간 도리의 비리는 물질문명을 주고 사는 대가로는 너무 높다. 새를 보고 새야새야 하며 반가워하는 동심과 새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우리를 멸망에서 건지는 하나의 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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